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선생 Jan 11. 2024

책 쓰기로 솔직해질 용기

글쓰기로 우리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어릴 때 글짓기로 상을 제법 타는 어린이였다. 교내 글짓기나 일기 쓰기 대회로 한 해에 열 장 이상의 상을 챙겨 오곤 했다. 중고등 시절에도 매년 교내 백일장에서 꼬박꼬박 수상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글 속에 진심을 고스란히 담는 아이는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와 소재를 분석해 글을 짓는 게 내 주특기였다.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감흥 없이 먹다가 ‘저녁 무렵 집에서 풍겨오는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에 감동했다’는 내용의 시를 짓는 식이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겉보기에 그럴듯하기만 한' 얘기를 활자로 옮기는 일은 줄었다. 글 쓸 기회 자체가 줄었으니까. 쓰는 거라고는 문자 메시지나 수업 지도안이 전부였다. 본업에 관련된 공저를 쓴 적은 있었지만 그건 가르치는 교과에 관한 글이었다. 온라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어 내려갈 거라고는, 그 글을 모아 에세이라는 장르의 책을 낼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0년 닥친 팬데믹과 해외 생활이 내 삶을 바꿔 놓았다. 바깥활동을 할 일이 줄어들자 외로움이 극에 달했고 아무에게나 말을 쏟아내고 싶었다. 바로 이 공간,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본명(내 본명은 그렇게 흔한 이름이 아니다) 이 아닌 유랑선생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고, 아무도 날 모르니 큰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 고민과 공감에 바탕을 둔 글을 썼으므로 내 가족사, 욕망, 좌절, 생활에의 부적응을 가감 없이 활자로 풀어냈다. 그 시점까지는 큰 고민이 없었다.     






두려움이 찾아에세이 출간 직전이었다. 온라인에 풀어헤친 글을 엮은 책이었다. 내 과거사와 사생활을 책에 담아 펼쳐 내는 게 괜찮은 건가. 본업으로 복귀하면 문제 될 일이 아닐까. 고민이 이어지고 머리끝이 쭈뼛 섰다. 극도의 두려움에 출간될 책을 죄다 불태우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린 날도 있었다.      


 이어지는 생각에 시달리고 걱정이 그득할 때 한 편집자님을 만났다. 청소년 책을 같이 작업했던 분이었다. 고민을 털어놨다. 에세이 출간이라 내 얘기를 적어놨지만, 이런 식으로 사생활을 밝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누가 내 글을 보고 함부로 날 판단할지 걱정이라는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놨다.  가만히 듣던 오랜 경력의 편집자님이 답했다.      


작가님 사생활을 다들 알 정도로 그 책이 흥행하면 참 다행이겠어요(!)     


 짧고 강력한 촌철살인이었다.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나에 대해 수군거릴 정도로 정도라면 책이 어마어마하게 흥행한 것일 테지만, 다행히도(!) 그렇게까지 인기몰이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해는 금물이다. 나는 지금 예비 저자에게  좌절을 안기고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솔직해질 용기를 드리려 쓰는 글이다.)  


 진실은 간단하다. 책에 담긴 저자의 사생활을 수군거릴 만큼 '책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진실. 문체부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이 47.5%다. 책 한 권이라도 읽은 한국 성인 비율이 절반도 안 됐단 얘기다. 그중에 내 책을 집어 들고 끝까지 읽을 사람이 많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출판계의 서글픈 진실이기도 하고 저자에게도 다소 슬픈 일이긴 하지만, 묘한 안도감을 주는 진실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글을 끼적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주변인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책을 몇 권 출간하며 깨달은 진실인데, 생활에서 알게 된 지인들은 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내 배우자의 경우 내가 집필해 출간한 책 12권 중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출간 후에 출판사에서는 저자에게 증정본을 10~20권 정도 준다. 증정본을 지인에게 나눠줄 때가 있다. 첫 책을 낼 때와 달리 이제는 나눠주면서도 읽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책을 내고 저자가 된 날 질투해서, 내 글이 본인 취향이 아니라 읽지 않는 사람도 가끔 있다. 그러나 그저 바빠서 내 책을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읽어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날 아끼는 지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온라인에 올리는 글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브런치나 인스타 구독자 중에 가족들도 있고, 친구나 학교 선후배도 있고, 근무하며 만난 동료도 있고, 함께 작업한(또는 작업할) 편집자들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라 해서 내 글을 찾아 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편집자라고 해서 내 글을 반드시 챙겨 읽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삶을 꾸려가기 바쁘다. 시간이 부족한 만큼 자신에게 도움 될 만한 글을 몇 개 골라 읽게 마련이고. 온라인에 쓰인 ‘유랑 선생’의 글을 보고 날 검색하거나 찾아볼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야, 두려움 없이 의연하게 내 이야기를 적어 올릴 수 있다.   


아무리 관심받지 못해도 날 선 비판을 받을 순 있다. 날 모르는 독자가 책을 읽고 비판을 쏟아낼 때, 책에 담긴 내 모습을 전부라 오해해 마구잡이 비난을 할 때는 서글퍼진다. 오해받게끔 글 쓴 날 탓하며 자책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려고 작정한 사람은 누구든 대상을 찾아 비난하게 되어 있다. 그 사람에게 내재된 인식의 한계, 과거의 상처, 그 모든 것들이 책을 오독하게 만들고 혹독한 비평을 날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걸 일일이 우리가 정정해 줄 수 없음을 기억하는 게 좋다.


 더구나 출간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서로에 대한 오독(誤讀)은 쉽게 일어나는 일 아닌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상대라는 텍스트를 조금씩 오독한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생각과 마음을 밝히고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일이다. 오해받을 일은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남을 기억하면 마음의 위안이 된다.       






 그렇다면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가감 없이 밝혀도 될까. 나는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심과 진실을 전하는 데에도 노하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친구나 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때 고민이 생긴다. 책에 넣을 지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방법도 있고. 이니셜로 대체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사생활 정보를 조금씩 다르게 적을 수 있다. 지인들의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상세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람에 관한 사실 하나하나를 모두 밝힐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글에 담을 때에는 잘 생각해 보는 게 좋다. 그 상황에 대한 분풀이를 하고 폭로하고, 상대를 나쁜 놈으로 몰아가고 상처 주려는 것이 글의 목적이며 방향인지. 물론 솔직한 감정 배출도, 진실 폭로도 글의 목적이 될 수 있다. 그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하는 글도 많다.     


 그러나 타인의 이야기를 담아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했다면, 조심성이 필요할 때도 있다. 책으로 출간하는 글은 일단 세상에 나오고 나면 삭제나 수정이 어려우니까. 내 어려웠던 상황이나 울분, 분노의 감정도 한발 짝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글쓰기는 이런 객관화에 적합한 과정이다. 가령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한 내용을 글로 옮긴다면 그 폭력적인 상황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글로 옮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감정 소모도 엄청나다. 그러나 일단 머릿속으로 내가 가진 진실을 복기하고, 그 진실을 활자로 적어 내려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 삶의 관찰자가 된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 아픔을 바라볼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다.      


 특히 퇴고는 독자의 입장에서 내 글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읽는 이가 되어 내가 적어 내려간 활자를 다시 살펴보고 다듬다 보면 감정과 진실이 한 결 가다듬어진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던 진실의 사각지대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글은 입체적이고 생생해진다. 타인을 비난하려는 글로만 남지 않는다. 지레 겁먹지 않아도 괜찮다. 글을 적어 내려가고 수없이 가다듬어가면 진솔하면서도 사려 깊은 글이 탄생할 수 있다.            

  

책 쓰기의 작은 팁

1.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쓰고 있다면, 사람들에게 허락을 맡는 것이 좋다. 그러나 글에 쓸 내용이나 사건에 대해 지인의 이름을 구태여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 없는 경우에는 이니셜을 쓰거나 지인으로 처리해 글을 적어도 괜찮다.

 2. 내가 직접 경험한 진실이라도 때로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적절한 언어를 고르며 접근해보는 게 좋다. 퇴고의 과정을 통해 심사숙고하며 글을 가다듬으면 독자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글이 된다.            



첫 에세이 내기 전 마음의 혼란(!)을 밝혔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aring/120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겨울 잘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솔직함에 대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언젠가 "독자의 감정보다 저자의 감정이 먼저 앞서 나가는 글은 읽기에 부담스럽다"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에세이를 쓸 때는 그 충고를 많이 기억하는 편입니다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제 막 방학을 해서 글 쓰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는데 게으름이 절 찾아오고 있네요. 그래도 방학에는 원고도 마음껏 쓸 수 있고, 이 공간에 글 쓸 여유도 조금 생겨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


다음 글은 1월 18일(목)에 발행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


이전 08화 내 책을 출간해 줄 출판사, 어떻게 찾고 고를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