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 벼루 feat. 붓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 미술시간은 참 즐거웠다. 비록 색칠과 배경까지 쉬는 시간 전에 끝내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과, 물감을 섞어가며 발색을 해야 한다는 귀찮음에, 물을 많이 탄 수채화 형태로 마감이 되곤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재밌는 수업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 미술을 하다 보면 꼭 한 번은 포함되는 수업이 있다. 나는 서예시간이 싫었다. 일단, 준비물이 너무 많다. 먹과 벼루, 문진과 화선지 그 밖에 자잘한 것들까지, 꼭 한 가지를 빼놓고 오게 된다. 그리고 너무 검다. 먹물은 꼭 한번 잘 닦이지 않아 옷에 묻게 된다. 먹물은 사실, 사서 쓰는 게 아니고 먹을 갈아 만들어야 하는데, 2시간이 안 되는 미술시간은 쉬는 시간이 중요한 나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잊고 지낸 줄 알았던 먹과 벼루는 대학생활 우연지 않게 또 찾아왔다. 꽉 막힌 공대 전공을 벗어나 미술을 즐겨보고자, 교양대신 미술학과 전공 수업을 신청했다. 번잡스러운 미술 준비를 피하고자, 캘리그래피라는 과정을 선택했다. 오판이었다. 수업 개요를 더 잘 읽어봤어야 했다. 붓글씨를 활용한 캘리란다. 먹과 벼루뿐 아니라 다양한 붓과 심지어는 색물감도 사용한다. 미대 강의실과 공대 강의실 사이에는 산도 하나 있었다. 그 학기, 처음으로 F와 함께 학사경고를 받았다.
먹의 매력은 흑백사진과도 같다. 성인이 된 다음 일러스트 미술 강의를 들었을 때, 다시 한번 먹과 벼루를 접했다. 이 때는 돈의 힘들 빌렸다. 준비물은 이미 세팅이 되어있었고, 몸만 가면 되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코끼리를 먹으로 그려보았다. 붓이 아닌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젓가락으로도 표현해 보았다. 색이 주지 않는 매력, 동일한 흑색 안에서 명암만으로 표현되는 색의 깊이, 나의 감정이 붓 또는 그림도구를 통해 전달되며 나타나는 선의 굵기, 한 장의 그림 안에서 내 내면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 집안 어르신이 조용한 서재에 앉아 서예를 하는 모습이 종 종 나타난다. 소매를 걷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먹을 갈고, 당신이 생각하는 글귀를 여러 번 곱씹으며 종이 위에 스르륵 적어 낸다. 같은 문구, 단어라도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어르신이 쓰는, 신념을 나타내는 글귀라면 더욱 글을 적는 사람의 의도가 획 하나하나에 반영된다.
예술은 내면의 표현이다. 어쩌면 글을 그리는 서예야 말로 가장 쉬운 예술의 표현 중 하나가 아닐까? 물론 준비물은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