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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Sep 01. 2023

이상적이고도 이성적인 이직

 이직을 고민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감정적이거나 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인 요인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사람 문제다. 주변에서도 사람 때문에 이직하는 경우를 여럿 봤다. 친구 한 명은 퇴사하는 날까지도 상사와 눈 맞춤을 피했다고 한다. 그 친구와 바닷가에 놀러 간 날 허공에다 상사 욕을 하는 걸 옆에서 보고 드라마 찍냐고 놀리고 웃었었는데… 진심이었다니 미안해진다. 원자폭탄처럼 문제점 하나는 어느새 둘로 파생되고 셋을 넘어 가지각색의 이유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걸리적 거리는 문제 곁엔 늘 또 다른 문제가 있더라. 지극히 사소한 문제들이더라도 쌓이고 커지고 손쓸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포기한다. 그 포기를 수면 위에 드러낼 때 이직이란 카드가 나오지 않을까.


 감정적인 문제로 시작한 이직의 끝은 해피엔딩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드디어 그 사람과 한 공간에 있지 않게 된다’는 점은 한순간의 기쁨 정도일 뿐. ‘왜 이직하려고 하나요?’란 타사 면접관 질문부터 주위 친구들과 가족의 물음에 ‘저 사람 때문에..!’ 이런 근원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 속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에겐 진짜 이직 사유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들리는 말은 뻔할 테다. 슬픈 표정의 공감과 그 사람에 대한 화난 눈썹의 비난뿐. “자 지금부터 코뿔소를 생각하지 마세요” 하는 순간 코뿔소가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누군가 ‘이직’이란 발작 버튼을 건드렸을 때 첫 번째 알고리즘은 ‘그 사람’이 뜬다. 그러고는 두 번의 실수는 방지하기 위해 잡플래닛, 블라인드에 새로 갈 회사의 후기들을 계약서 읽듯 샅샅이 살피게 될 테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이직은 이성적인 게 아닐까 싶다. 커리어, 복지의 향상과 목표 달성이라는 명목. 지금 회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옆그레이드가 아닌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냉소해 보일 수 있을 정도의 결단력이 필요하다. 한 달 전 우리 회사로 이직하신 분이 있었다. 해외 대학 출신 타이틀이 있던 그분은 오자마자 회사 홍보 영상 번역이란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잘나가는 외국계 광고 대행사로. 이런 결단력에 박수를 보낸다. 나 같으면 ‘계약서엔 문제가 없으려나’ 등 여러 걱정들로 불안했을 테다. 그분은 오히려 ‘한 달 밖에 안 되었으니 더 늦기 전에 가자’란 마인드 아니었을까. 이직만큼은 본인의 커리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에 명확하고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란 걸 이렇게 배운다.


 언제 이직의 맛을 보게 될까. 커리어, 연봉, 복지, 워라밸, 팀원 등 여러 조건 중에 우선순위는 뭘까. 동기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누구는 곧 죽어도 커리어, 누구는 팀원, 또 누구는 워라밸. 다양하다. 왜 다를까 생각해 보면 꿈의 종착지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랐다. 광고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광고홍보학과 교수가 최종 목표인 A는 커리어를 택했고, 대행사가 아닌 클라이언트로 일하는 게 꿈인 B는 팀원을, 광고에서 벗어나서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C는 워라밸과 연봉을 선택했다. 꿈의 무게가 가볍지 않으니까 이직도 신중히 해야 할까? 아님 이직도 경험이니 부딪혀 봐야 할까? 첫 이직을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나와 같은 주니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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