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안고 시작한 포닥생활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박사시절 힘들었던 기억이 가득하고 끝이 안 좋았던 동네에 다시 와서 포닥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에 마음이 많이 어려웠는데, 막상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주제, 그리고 새로운 생활반경을 가지고 살아가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오히려 생활이나 일적인 면에서 나쁜 점이 없다고 할 만큼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1월 말경에 폭탄이 떨어졌다. 트럼프가 NIH (미국 국립 보건원)의 펀딩을 freeze 시키고, 모든 그란트 관련 미팅을 중지시킨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라는 생각이 들지만, 대통령 한마디에 정말 이렇게 하루아침에 NIH는 기능이 마비되었다. 나는 지금 포닥자리에 오기로 결정하기 전, 작년 11월에 NIH포닥 자리에 2차 면접까지 봐놓은 상태였는데,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그때 면접 봤던 PI로부터 연락이 와서, NIH는 당분간 아무도 고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만약 NIH포닥자리를 계속 노리고 기다렸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다행히, 2월 초에 펀딩 freeze는 취소(?)되었지만, 연구비의 15%만 간접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으로 바뀌어서, 의료/보건 연구를 위해 NIH 펀딩에 의존하는 학교와 병원에서는 난리가 났다. 실제로 우리 학교도 간접비의 % 제한으로 인해, 원래 예산의 46%가 감축되는 상황이 초래된다고 하며, 우리 학과가 있는 보건대학교에서도 스스로 펀딩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고용을 하지 않겠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하는 보건연구와 같은 경우는, 대부분이 NIH의 펀딩에 의존하고 있고, 또 나 같은 junior researcher 같은 경우는 NIH펀딩을 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커리어 중에 하나인데, NIH예산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할 수 있는 연구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가능한 예산 안에서 그란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란트를 딸 수 있는 확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내 박사시절 교수님은 minor 한 주제인, 아프리카 아이들 대상 영양부족과 인지능력발달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시는 분인데, 교수님께서는 미국이 아닌 곳에서 미국인이 대상이 아닌 연구하는 본인의 그란트가 펀딩을 받을 확률은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연구 주제가 바뀌었지만, 한 때 나도 아프리카 아이들에 관한 연구를 했었고,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기에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나는 보건이 특정 계층이 아닌 인구를 대상(population-based)으로 하고, 주로 여러 질병의 예방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기 때문에, 가장 적은 돈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그런 연구가 어느 누구에게는 필요성이 와닿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또한 정치적인 결정들에 의해서 학계가 흔들거린다는 것이 굉장히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외국인에 계약직 연구자로, 미국 땅에서 보건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혹은 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job market이 형성되어야 하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는 고용이 침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으로서 더욱 기회를 잡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보건을 overpowering 하는 이 사태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내가 얼마나 이 보건이라는 학문을 좋아했었는지 깨닫게 되었기에, 다시 내 career path를 바꿔야 할 수도 있다는 것에 혼란스럽다.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