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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의 커뮤니티

연구주제 변화가 가져온 커뮤니티의 변화

by 하마생각

사실 내가 박사를 시작한 이유는, 국제보건 관련 연구자가 되어서 국제기구에서 일하거나, 한국에 (아직) 국제보건 전문가가 적었기에 향후 이 분야 학문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학부 때 공대를 전공하고 그 이후로 석사 이후로는 계속 국제보건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나의 이런 어쩌면 열정적이고 확고한 관심사가 흐릿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 박사를 하면서부터였다.


우리 학과(Epidemiology)에서는 만성병(암, 심장질환, 치매 등)을 연구하는 연구가 major연구계열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런 연구의 경우,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큰 코호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있고, 펀딩도 집중되어있기에. 관련 데이터도 많고, 학회도 많으며, 학교 내에서도 관련 교수님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형성한 그룹 내에서 세미나도 하고, 발표연습도 하고,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고, 그 그룹에 속한 학생 같은 경우는 연구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많다. 박사 끝나갈 무렵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만성병 관련 주제로 연구하는 박사 동기들 같은 경우에는, 이미 쓸 수 있는 데이터와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많아서, 연구 경험을 활발히 쌓을 수 있고 (학회를 간다거나 논문을 낸다거나...), 일찍이 박사논문을 준비해서 4년 만에 졸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국제보건, 정확히 말하자면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양상태와 인지능력발달 연구에 관심이 있었고, 우리 학과에서는 해당 주제로 연구하는 교수가 없고, 다행히 동 대학의 의대 소아과 연구교수님 중 우간다 아이들 관련 연구를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운 좋게 (?) 그분과 어떻게 연결되어서 그 교수님의 첫 박사생으로 박사를 시작한 케이스이다. 일단 교수님과 매칭은 되었지만, 교수님이 박사생을 고용할만한 펀딩을 갖고 계시진 않아서, 나의 챌린지는 펀딩을 확보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찌어찌 박사기간내에 내 연구주제와 관련이 없는 RA 구해가며 연명했고, 우리 지도교수님한테는 1학년 때 한 학기 25% 펀딩을 보조받고, 그 이후로는 펀딩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펀딩은 어찌어찌 감사하게 해결이 되었지만, 진짜 문제는 연구자체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었다. 일단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적으니 할 수 있는 연구도 한정되어 있고, 만약 연구를 진행한다 해도 샘플수가 작아서 양질의 논문을 써내는 것은 무리였다. 실제로 나는 교수님이 가진 데이터셋 하나로 겨우 한 논문을 쓸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논문을 더 쓰고 싶었으나 마땅한 데이터가 없어서 연구가 무산되었다. 데이터 샘플 수가 많아야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해 분석할 수 있고, 신뢰도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연구의 질이 한정적이어서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뿐만 아니라, 메이저 연구의 경우, 여러 학회에 참여할 기회도 많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의 연구를 학계에 present하는 연습도 되고,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고 볼 수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갈 수 있는 학회가 많이 없었고, 가고 싶은 학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도교수님이 펀딩이 없으셔서 가기 힘들었던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속해있는 연구 그룹이 없고, 교수님과 1:1로만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이랑 1:1로 일하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교수님께서 논문지도에 엄청나게 열정이 있거나 시간을 쏟는 분은 아니었기에, 결국 1:1 지도라 하더라도 한 달에 두 번 회의할까 말까였다. 나는 교수님께 더 많이 배우고,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피드백도 더 많이 받고 싶었는데, 그런 교류가 활발하지 않으니, 나 혼자 (속히말 해) 삽질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박사 기간 내 스스로 펀딩기회를 찾던 와중, 어쩌다가 메이저 주제에 RA로 일하면서 연구의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완전 신세계였다. 한 연구 프로젝트에 2명의 Epidemiology (역학) 교수님과 Biostatistics (보건통계학과) 교수님이 달라붙어 매주 회의를 진행했고, 나는 매 회의마다 데이터분석을 해서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고,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그런 식이었다. 당연히 회의를 정기적으로 하고, 교수님 세 분의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해서 목표로 하는 연구 질문에 잘 답하기 위해서 여러 분석을 해보고 타당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다양한 토론들이 오갔다. 또한 관련 연구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사용가능한 데이터가 여러 개 있어서, 데이터를 바꾸어가며 한 데이터를 사용해서 내린 결론이 타당한지 확인하는 단계도 거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더욱 양질의 연구를 하고, 더 impact power가 높은 논문을 출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박사시절 내 메인 연구주제와 내가 사이드로 연구를 보조하는 연구주제의 진행 방식과, 할 수 있는 연구의 범위가 다른 것을 느끼며 점점 내 연구주제 (혹은 그 주제에 관해서 할 수 있는 연구)에 대해서 열정이 식어가고, 조금 더 다양하고 신뢰도 있는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그래서 박사 졸업 후에는, 아예 학계를 떠나거나 주제를 바꿔서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박사 때 연구보조했던 교수님께서 치매 관련 새로운 펀딩을 따시면서, 나를 포닥으로 고용해 주셨다.


어쩌면 많은 박사/포닥생들한테는 당연한 일일 찌도 모르지만, 나는 포닥을 하면서 일주일마다 교수님을 만나서 같이 토론을 하고, 또 내가 연구하는 치매 관련 그룹, 또 내가 쓰는 데이터 (omics) 관련 그룹, 그리고 크게 만성병 관련 그룹에 속해서, 회의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또 발표연습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그런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또 한 번 놀랐고, 나도 그 모임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게 정말 기뻤다. 실제 회의를 할 때마다 교환하는 아이디어들이 나에게 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또 이런 그룹에 속했을 때는,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펀딩을 쓸 때,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많으니, 양질의 연구환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마이너 연구주제에서 메이저 연구주제로 변환하며, 연구환경과 기회에 대해서 많은 차이를 느끼는 요즘이다. 환경을 보고 연구주제를 택하지는 않을 테지만.. 누군가가 박사진학에 고민하고 있다면, 연구가 펀딩이랑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에.. 실제 연구할 수 있는 기회와 지도받을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잘 고려하고 박사진학을 고려했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나와 같은 답답함과 혼란을 겪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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