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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n 25. 2024

신발 끈 단단히 묶고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4


사람 만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끔찍하게 힘들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사건을 만들어 내 안의 보금자리로 숨었다.

늘 숨어 지냈다.

하자 상품을 구매해도 환불 못하는, 손해 보더라도 양보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는 내가 걱정된 남편은 산책이라도 가 봐라, 하고 싶은 운동 있으면 다녀봐라, 동네 동아리 활동이라도 해봐라 등등 정성스럽게 나를 도왔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불가피하게 아이들 행사로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야 하거나, 차 마시자는 약속을 너무 많이 거절해 도저히 거절할 수 없을 상황이 오면 약속 이틀 전부터 우울해했고 다녀와서는 남은 하루를 걱정으로 지새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실수를 한 것 같고, 상대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풍선껌처럼 부풀어 오르는 걱정은 내 온몸에 끈적하게 붙어 씻어도 떼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상대가 이렇게 오해하진 않을까, 괜히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해서 지루하진 않았을까, 사람들이 날 안 좋게 본다면, 흉을 본건 아닌데 잘못된 이야기가 퍼지면 어떡하지?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건 아닐까, 이게 나중에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어떡해...'

차라리 말하기보다는 들어주기가 더 편했다. 괜스레 더 오버해서 웃고, 반응하고, 공감해 주었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마음이 털털 털린 채 집 안의 모든 불을 다 끄고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어야 진정이 되었다.

상대가 나에게 실수한 것도, 무례한 행동을 한 것도 없었다. 사실 몇 번 마음의 상처를 받은 대화가 있지만 그것이 이 정도로 사람 만나기를 꺼려 할 이유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고 도피처를 찾아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한다고 주변에 알렸다.

물론 시험 준비를 내가 원해서 한 것이지만 이것이 어느 정도 나의 방패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혼자가 편해지고 혼자이고 싶은 날이 늘었다.


시험공부에 매진하던 그날,

토익 목표 점수를 또 못 낸 그날,

요가 학원을 한 달 다니고 그만 다니게 된 그날,

사주 공부를 접기로 한 그날,

홀로 걸어 도서관에 다녀온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잖아.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것도, 가치관도, 관점도 다른데 내가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해. 남들이 나를 손가락질해도 내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안아주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건 나의 욕심이었어. 내가 욕심쟁이였어.'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신발 끈 단단히 묶고 길을 나섰다.


이렇게 글을 쓰고 인터넷상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큰일이자 큰 도전이었으리라.

여러 사람들의 작은 시선에도 상처받고, 소라게처럼 숨어 지내던 나는 무뚝뚝한 남편의 칭찬 한 마디를 간직하며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내딛는다.

"너는 글을 한 번 써봐. 너 일기가 책 같아."


아직 사람들의 눈길과 지나친 관심이 힘겨울 때가 있지만 (특히 예상 보다 말을 많이 하고 온 날은 더 그렇다.)

'될 대로 되라지! 다 잘 될 거야! 누군가 오해하고 나를 비난한다면 그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 그건 상대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야. 욕심 내려놓고, 나는 나의 길을 가자.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하자.'라고 다독인다.


오늘 하루도 서툴지만 신발 끈 꽉 동여매고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인사하고 걷는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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