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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n 27. 2024

우리 엄마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5

엄마는 이른 나이 21살에 나를 낳아 길렀다.

시골 청년이었던 군인 아저씨는 자신의 후배를 면회 온 여동생인 화려한 서울깍쟁이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날 이후로 외삼촌과 외할머니를 그렇게도 졸랐다고 한다.

"편지 한번 써줘. 그럼 오빠 군 생활 편해질 수 있어."

누구에게 갈지도 모를 그저 '군인 아저씨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쓴 엄마.

그런 편지를 받은 날아갈 듯 설레한 아빠.

휴가 때는 본인의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로 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장모님! 하며 넉살스럽게 밥을 세 그릇씩 먹고, 자신이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넙죽 절을 했다는 아빠.


그렇게 서울 아가씨는 빛나는 도시 생활을 접고 하사가 된 아빠와 강원도 화천 산골짜기에서 살게 된다.

낡디낡은 18평도 안되는 허름한 군관사에서 둘은 행복했을까?

근처에 마트도, 병원도, 노래방도, 도서관도 없는

있는 것이라곤 밭과 시골길, 밤이 되면 우는 개구리들과 잦은 훈련으로 얼굴 보기 힘든 아빠.

그래도 사랑 하나로 버티는 둘이었으리라.


내가 태어나고 동생이 태어나면서 

하사의 월급으로 아기 새처럼 오물거리는 우리의 먹성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병원 한번 가려면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한참을 가야 했고,

유독 목이 잘 붓고 열이 자주 나는 나 때문에 더욱 고생했다고.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몇 번의 헤어질 고비를 넘기며

그렇게 엄마는 더욱 강해졌다.


어느 날, 우리를 데리고 간 작은 동네 마트에서 비엔나소시지를 본 엄마.

서울에선 자주 먹을 수 있었던,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비엔나소시지.

너무 먹고 싶었지만 지갑에 현금이 부족했고

그날 엄마는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고.

너무 일찍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린 엄마.

꽃다운 나이가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산 엄마.


그래도 우리에게 낡은 옷 한번 입히지 않았다.

예쁘고 단정한 옷, 자주 빨아 깨끗한 운동화.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참관 수업, 녹색 어머니회...

난 늘 우리 엄마는 당연히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생과 싸우면 등짝을 맞고 엄마의 심부름을 도와야 했으며

장녀로서 때로는 엄마의 친구도 되어주어야 했고, 투덜거림도 들어주어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은 엄마.


무척이나 씩씩했던 엄마.

소심한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엄마.

그래서 자주 부딪히지만

나였으면 못 버티고 도망쳤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엄마였기에 그 삶을 버텨냈다고.

우리 엄마라서 가능했다고.



문득

그렇게 서울 아가씨가 살았을 젊은 날을 돌이켜보니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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