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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n 23. 2024

여행의 이유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2 

첫 가족 캠핑이었다.

둘째가 어린 것을 걱정해 텐트로 된 글램핑장보다 카라반을 찾았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주말에도 자유롭지 못한 남편이 힘들게 휴가를 냈으니 일정에 맞춰 여행을 가야만했다.

그래도 첫 캠핑인데 호텔이나 펜션과는 또 다른, 캠핑이 주는 매력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삼일을 내리 고민하고서 적당한 가격에 바비큐와 물놀이가 가능하고 모닥불까지 피울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정말이지 떨린다는 말을 도착 전까지 계속 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 여행이 되었다.


카라반은 사진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변기는 물을 내리면 화장실 바닥으로 물이 샜다.

앞에 물놀이를 할 수 있다는 계곡에 가니 이끼가 무성한 고인 물의 계곡이었다.

벌레는 어찌나 많은지 겁이 많은 첫째는 밖에 나가길 두려워했고 오히려 둘째가 덤덤했다.

실망 가득한 아이들의 표정에 이대로 캠핑을 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사장님에게 근처에 갈만한 곳을 물었다.

조금 걸어가면 낚시터가 있는데 낚싯대도 대여 가능하고 놀러 온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했다.

첫째를 달래 함께 낚시터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곳은 아이들이 갈만한 곳의 낚시터가 아니었다.

심지어 낚싯대 대여도 불가했다.

터덜터덜 아이와 걸어오는 길이 미안함의 연속이었다.

차라리 돈을 더 들일걸, 그냥 자주 가던 호텔로 예약할걸. 나 또한 후회가 가득했다.

이대로 여행의 추억을 망칠 순 없었던 나는 캠핑의 묘미는 바비큐와 마시멜로 구워먹기라며 다시 흥을 돋우었다.

다행히도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니 불향이 밴 고기는 끝내주게 맛이 있었다.

집에서나 호텔에서는 절대 이런 저녁을 먹을 수 없다고, 오직 여기서만 맛볼 수 있다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밤양갱'을 들으며 신나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모닥불을 피우고 꼬치에 마시멜로를 끼웠다.

엄마는 태울 것 같아 걱정되니 아빠가 구워달라는 둘째의 말을 뒤로한 채  엄마를 믿어보라며 맛있게 구우려 노력한 내 의지와 달리, 마시멜로는 갑자기 불이 확 붙어 어느새 까만 젤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모닥불을 바라보며 멍하니 함께 한 우리 가족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래, 여행이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지.

첫 캠핑인데 아쉬운 마음은 가득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실망스러운 상황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밤새 벌레를 수건으로 때려잡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잔 남편에게 피곤할 텐데도 묵묵히 운전해 주고 즐거운 추억 만들어주려 애써줘서 고마웠다.

아이들에게도 미숙한 엄마, 아빠의 여행 계획을 그래도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

밤새 깜깜해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무섭다는 첫째를 달래며 잠 한숨 못 잔 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짜증 내지 않고 잘 달래주어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첫 캠핑에 호되게 당했지만

이런 경험도 필요한 거지라며 다음 여행은 호텔로 가자고 웃어넘기며 더욱 단단해진 우리 가족.

이것이 여행의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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