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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무게

by 김초아

“힘들면 언제든 그만 둬! 오빠, 우리가 힘을 합치면 뭐든 다 이겨낼 수 있어. 죽을 것 같이 힘들면 억지로 참지 마. 어떻게 평생 한 직업만 하면서 살아. 난 언제든 괜찮아. 알겠지?”



일이 바쁜 남편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출근했고 해가 다 지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들어 더욱 쓰러질 것처럼 수척해진 얼굴과 거칠어진 피부, 그리고 푹 꺼진 눈언저리를 보고 있자니 몹시 안쓰러웠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잔소리처럼 물어도 남편은 늘 “뭐, 똑같지.”라고만 대답했다. 맥 없는 대답에 나는 어떤 말도 힘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피곤할 테니 일찍 쉬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기다렸다가 고요한 밤이 되면 차디 찬 맥주캔을 땄다. 피곤할 텐데 왜 또 술을 마시냐는 나의 말에 남편은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피곤한 건 똑같아.”

잔에 가득 따른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남편. 그의 목젖은 퇴근도 못하고 억울하게 야근을 했다.


가장의 무게는 2,800원이면 해결되는 걸까. 두 캔을 마시니 5,600원쯤은 필요하려나.


같이 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 한구석에 간직했던 미안함이 올라왔다. 그리고 괜스레 힘들면 그만두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어디든 취직해서 오전에 돈 벌고, 오후에 남는 시간에 알바 틈틈이 할 수 있는 일 하고. 또 뭐, 찾아보면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당신, 미용하고 싶다고 했지? 배워서 가게 차리고, 또 그러다 다른 일 생기면 해보고! 둘이 같이 하면 그래도 지금 월급 정도만큼은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침묵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리고 현실을 마주했다.

“그런데 지금 당신 월급만큼 버는 일이 되게 어려운 거구나.”




아내와 두 자녀를 책임져야 하는 건 발톱에 피멍이 들어도 버텨야 하는 일이었다. 흰머리와 뱃살이 늘어나는 일이었다. 나의 지긋지긋한 잔소리에도 아무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진이 빠진 상태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아이들에게 일찍 자라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집 앞 빈 상가에 카페를 차릴까? 어떤 브랜드의 카페가 좋을까?’를 상상하며 웃다가, 단지 상상만으로 접어두는 일이었다.


우리는 동시에 맥주를 마셨다. 쉽게 그만둘 수는 없겠구나, 아마 남편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전에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 덕분에 열심히 사는 거라 생각하자고 말이다. 그때도 남편은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이제 와 조금, 보단 많이 후회스러웠다.


“내일은 오빠가 좋아하는 얼큰한 두부조림 해 놓을게.”

고맙게도 그 말에 남편은 씩 웃었다.

마치 그거면 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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