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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좋은 엄마

by 김초아

자취할 적에 내 방의 냉장고는 늘 비어있었다. 딸이 밥은 잘 챙겨 먹는지 걱정됐던 어머니는 종종 멀리서 반찬을 차에 싣고 왔는데, 그것조차 다 못 먹을 때도 많았다. 심지어 데우는 것도 귀찮아 차가운 반찬을 그냥 먹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요리는 왜 이렇게 귀찮았는지, 내 밥 차려 먹는 건 왜 이리도 서먹했던지.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모든 행위 중에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걸 꼽으라면 나는 요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나에게 요리는 왜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 존재인지 알 수 없으나, 배고픔과 졸음이 동시에 올 때면 나는 무조건 잠을 먼저 선택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닌 절친이 있다. 한 번은 그 친구와 내 방에서 술과 수다로 신나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우리는 퉁퉁 부은 얼굴로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까지도 숙취와 씨름하며 누워있는 나를 옆에 두고 친구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해장은 역시 먹을 것으로 해야지.”

“해장은 잠으로 하는 거 아니니?”

“무슨 소리, 먹어야 속이 풀려!”

친구는 나에게 집에 먹을 것이 있는지 물었다. 전날 시켜 먹은 치킨은 이미 다 먹은 뒤라 남아 있지 않았고, 그나마 있던 것은 ‘3분 짜장’이었다. 나는 주방 서랍에 있으니 꺼내어 먹으라고 했다. 밥은 햇반을 돌려야 한다고 덧붙이면서.


나의 오랜 친구는 나와 달리 원래 밥을 잘해 먹는 편이었다. 내 자취방에서 5분 거리에 떨어진 집에서 친오빠와 자취를 했던 친구는 갓 성인이 됐어도 요리를 곧잘 했다. 집에 가면 냉장고에 반찬 세 가지 정도는 언제나 있었다. 밥을 해 먹는 게 왜 귀찮냐며 가끔 나에게 잔소리도 했으나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친구는 짜장을 맛있게 먹고, 혹시 하나 더 먹어도 되냐며 물었다.

“너 속 안 쓰려? 난 아무것도 안 들어가. 너 다 먹어도 돼.”

친구는 배시시 웃으며 짜장 봉지 하나를 더 뜯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그만큼이나 요리에 소질도 없을뿐더러 요리와 친하지 않은 사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로부터 십 년이 훌쩍 지나 먹성 좋은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나는, 돈가스 김밥을 쌌다. 그냥 김밥도 아니고 ‘돈가스 김밥’을 말이다.

“얘들아, 엄마가 생전 처음으로 돈가스 김밥을 싸 보네. 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어줘.”

“엄마, 세계 최초의 돈가스 김밥! 와! 좋아!”

“아니, 세계 최초는 아니고, 엄마가 살면서 처음으로 만들어 본다는 말이야.”


인터넷에 올라온 조리법을 꼼꼼하게 살피고 마트에서 김과 단무지, 우엉, 햄, 깻잎과 돈가스 소스를 준비했다. 최대한 분식집에서 파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무려 깻잎까지 말이다.

조리법대로 준비한 재료들을 넣고 터지지 않도록 꾹꾹 말았다. 고소한 들기름 발라 썰어 접시에 주니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젓가락이 빠르게 오고 갔다. 정성 들여 준비한 걸 아이들도 느꼈는지, 맛있다며 연신 감탄하며 먹어주는 아이들.

그러더니 대뜸 둘째가 말했다.

“엄마, 엄마는 그냥 엄마 아니고 솜씨 좋은 엄마야! 엄마 최고!”

그 말을 들으니 없던 힘이 불끈 생겨났다. 피곤으로 묵직했던 머리는 맑아졌다. 그리고 김밥을 밤새도록 쌀 수 있을 마법과 같은 의지가 샘솟았다.

“솜씨 좋은 엄마?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고마워. 다음에 또 해줄게.”


밥 차려 먹을 바에는 굶는 걸 선택했던 내가 말 한마디에 이끌려 매일 요리를 한다고 하면 친구는 무척이나 놀랄 텐데.

이토록 어여쁜 힘은 나를 밤이 되면 요리 블로그를 뒤적거리며 다음 날 메뉴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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