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은 가끔 뜻밖에 위로를 준다.
연휴를 앞둔 날의 밤, 알 수 없는 알고리즘 체계로 보게 된 영상은 어느 무당의 ‘막힌 운이 뚫리는 법’이었다. 답답했던 날이 지속되었던 나에게 딱 필요한 영상 제목에 이끌려 고민 없이 영상을 틀었다.
“보면 누굴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있어. 가족, 부모, 자식, 다른 사람한텐 그렇게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정작 본인한테는 단돈 만 원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사람들 말이야. 아니, 본인부터 챙기고, 본인이 잘 먹고 잘살아야지. 도대체 무얼 위해서 사는 거야? 여행이라도 좀 가세요. 백만 원 정도면 비행기 타고 일본도 갔다 올 수 있어요. 백만 원이 적은 돈이 아니지만 나를 위해서 그 정도 못쓰나? 그럼 대체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건데? 나를 위해 사세요. 내가 먹고 싶은 것 좀 먹고, 내가 입고 싶은 옷 좀 사 입고. 사치를 부리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먼저 행복하고 편안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영상이 끝나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전국 지도를 보며 오직 나를 위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
“거기 가면 뭐 있는데? 놀이동산 있어?”
문경에 가자고 하면 분명 첫째가 이렇게 물어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난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만 엄마가 가고 싶어. 분명 좋을 거야.”
“아니, 싫어. 싫다고! 놀이동산 가고 싶어. 아니면 수영장이나 재미있는 곳 말이야.”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와 말씨름하는 것이 치사하고 우스운 일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태까지 너희들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 가고, 모든 게 너희 위주였잖아. 이번에는 엄마가 여행 계획 세울 테니까 협조해 줘. 우리, 정말 쉬는 여행을 갈 거야.”
정말 쉬는 여행.
결혼식을 뒤늦게 하는 바람에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유난스러운 성미의 나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고, 곱씹어 생각해도 아이만 혼자 두고 남편과 진정으로 즐기다 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신혼여행을 키즈 펜션으로 갔고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해야만 했다.
이어 둘째가 태어나면서 여행은 더욱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 여행은 곧 노동의 연장이었고, 쉬지 못한 채 뒷바라지하는 통에 다녀온 후면 이틀은 몸살이 났다.
이런 일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홀린 듯, 내가 쉴 수 있는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문경에 가자고 한 것이었다.
숙박 업체를 찾다 낡고 오래된 펜션이 눈에 띄었다. 풀빌라도 없고 스파도 없지만 사진 속 그곳을 보자 그냥 그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오빠, 여기. 여기로 가고 싶어.”
‘지금 연휴 하루 전인데, 남아 있는 곳이면 별로인 거 아니야?’라는 눈초리를 한 남편의 의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곳에 가고 싶었다.
“분명 좋을 거야. 한 번 가보자.”
경상도로 향하는 길이 가까워질수록 높고도 푸른 산능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말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이어 창문을 열고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알이 잔뜩 배겨 있던 마음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빠, 여기는 나뭇잎 색이 달라. 푸른빛 초록색이 아니고 노란빛의 초록색이야.”
그 말에 남편은 픽, 웃었다. 나는 머쓱함에 말을 이었다.
“누가 보면 도시 태생인 줄 알겠어, 안 그래?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살았으면서. 그래도 여긴 강원도와 달라. 색채가 달라.”
차는 점점 산을 타고 올라갔다. 가파른 경사와 굽이치는 길을 지나자 문경에 온 것이 현실로 다가왔고, 이어 아이들이 실망할까 걱정스러웠다.
“앞에는 계곡이 있대. 우리 거기서 물고기 잡자. 놀이동산보다 훨씬 재미있을 거야.”
그렇게 우리는 산속 깊이에 자리한 인적이 드문 펜션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렸다. 들려오는 새소리에 편안했다.
이어 동그란 안경을 쓴 아주머니가 커다란 소쿠리에 있던 나물을 손질하다,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네 시골집에 놀러 온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충분히 편안해졌다.
주인아주머니는 앞에 계곡이 있지만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많이 말랐다고 했다. 하지만 물이 깨끗해 물고기와 올챙이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 했고,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어서 빨리 올챙이를 잡으러 가자며 졸랐다. 졸졸. 계곡물은 산꼭대기서부터 흘러 내려왔다. 중간마다 자리한 웅덩이에는 올챙이와 송사리, 도롱뇽과 물장군, 소금쟁이까지 있었다.
나는 바위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았다. 아이들과 남편은 포충망을 들고 물고기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더없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여기는 밤에 별이 정말 예뻐요. 별이 쏟아져요. 꼭 보세요.”
아주머니의 말에 꼭 별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먹고, 아이들은 사슴벌레를 찾겠다며 나무 사이를 오갔다. 사슴벌레는 조금 더 있어야 나온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시무룩하던 아이들은 금방 또 잊고 뛰어놀고, 줄넘기를 했다.
그때의 바람은 고요했고 노을은 선명했고 공기는 상냥했다.
밤이 깊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숙소 앞 의자에 앉았다. 쏟아지는 별을 바라봤다.
“오빠, 복잡했던 머릿속이 잔잔해졌어. 별이 참 예쁘다. 여행은 이런 거구나.”
십 년 동안 나에게 여행은 애쓰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던 시간이자,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만족시키는 시간이었다. 늘 여행이 내키지 않았고,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내가 원하는 모든 건 사거나 먹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무언가에 쫓길 일이 없고 쫓아갈 것도 없는 진정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게 된 그날.
아름다운 문경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비로소 나의 허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