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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ug 26. 2019

남편보다는 아들

사랑은 아래로 흐른다

올여름 아이들 먹거리로 옥수수를 몇 번 샀었는데,
한 번은 잘 못 사서 맛있게 먹지도 못하고 먹는 둥 마는 둥 한 적이 있다. 시기적으로 당연히 익었으리라 믿고 샀는데 옥수수 대부분이 여물지가 않은 상태였다. 듬성듬성 알맹이가 차다 만 게 태반이어서 쫀득하고 고소한 노란 알갱이를 털어 먹는 즐거움이 없어 아쉬웠다. 한편으론 이런 것도 확인하지 못하고 샀나 해서 농수산 시장까지 혼자 가서 사 온 공로를 무시하고 남편을 타박하고픈 마음이 일었다.

어쨌든 바꿀 수도 없고 먹기는 해야 하니까 압력솥에 넣고 소금과 설탕을 조금 넣어 쪘다. 역시 생각한 대로 영 맛이 나지 않았다. 씹는 맛도 없고 옥수수 특유의 미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확연히 성글고 못 난 옥수수만을 골라 몇 개 갖다 주며 한차례 통박을 주었다.

''자, 봐, 먹어봐~이게 뭐야..
잘 좀 보고 사지, 그 치밀한 성격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애들이 먹을 거 같지 않은데~''

''어라, 진짜 옥수수가 덜 여물었네,
에이 ~왜 내가 이런 걸 샀지~~''

조잡하고 엉성하게 박힌 옥수수만 일부러 골라 준 게 마음에 걸렸지만 대다수가 그런 상태였고 그나마 아이들 먹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한 개쯤은 그래도 토실한 거 줄 거 그랬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차에 내가 준 걸 다 먹은 그가 어슬렁 일어나 주방으로 왔다. 옥수수를 더 먹으려는지 솥을 들여다본 후 클클 웃었다.

''흐~나한텐 안 좋은 것만 골라줬구먼~너무해....''

''크큭, 그럼 어떻게 해, 애들이 그런 건 분명 안 먹을 텐데...''

작년 딸기 축제가 한창이었던 봄날, 축제장을 지나는 길에 샀다며 그가 퇴근길에 봄직, 먹음직한 딸기를 사 온 적이 있었다. 딸기를 씻어 소파에 있는 에게 먼저 몇 개 주려고 접시에 담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주저주저하는 것이었다. 좋은 건 제쳐두고 작고 모양 나지 않는 것만 접시에 담는 것이었다. 그깟 딸기 분배에서조차 편애하며 갈등한다는 마음에 스스로도 적지않이 놀라웠다. 맛있고 좋은 건 남편보다 아이들에게 먼저인 내 마음. 우리 자랄 땐 뭐든지 아버지가 우선이었는데.... 현대의 아버지들한테 측은지심이 일면서도 나의 주관은 단호했다. 애들은 성장기잖아....

그때도 남편은 '아 달다' 감탄하며 먹다가 양에 차지 않았던지 일어나서 아이 몫으로 남겨 놓은 딸기 접시 앞으로 갔다. 접시 앞에서 머뭇머뭇하는 듯하더니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애만 좋은 거 다 주었네~몇 개만 더 먹으려고 작고 못생긴 거로 고르려고 하는데, 다 좋은 것만 있어서 집을 게 없어~진짜 너무하네, 아, 섭섭하다~~!''

''하하하하~~~''
''크크크크~~~''

설거지를 하던 나는 안 그래도 찔리던 차 미안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들킬까 조마조마했던 게 우스워서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크큭거리며 웃었다. 모성애에 ko패 당했음을 깨끗하게 시인한다는 웃음 이리라.

이미 성장이 끝난 어른보다도 이제 막 성장하는 아이들이 더 잘 먹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나지만, 그래서 저절로 아이들을 먼저 챙기게 되긴 하지만 뭐라도 아버지 먼저 챙겨드리고 어른을 공경하던 예의범절의 시대가 가버린 듯하여 가끔은 심경이 복잡해지기도 하면서 좋은 풍습이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도 되는 양  노파심을 갖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 세대는 미풍양속의 가치라는 바턴을 마지막으로 들고뛰는 X세대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에세이 #옥수수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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