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쁜 엄마 하기 싫어

by lapuncha

딸아이가 또 시간이 다되었는데 만화를 더 보겠다고 징징댄다.


"엄마하고 약속했지, 시곗바늘 여기까지 오면 끄기로 했잖아."

"아니야, 엄마! 더 볼 거야, 더 볼 거야! 으앙!"

"아니야, 오늘은 여기까지야."


나는 단호하게 리모컨을 들고일어난다.

딸아이는 이제 경기하듯 온 힘을 다해 발바닥을 구르기 시작한다.

이런 순간마다 도대체 때리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진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눈은 아이를 봤다가 tv를 봤다가 어느 한 곳 정착하지 못한 채 자꾸 불안해진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가 아이 이름을 부른다.

어깨를 잡는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들여다보고 말한다.


"시언아, 만화 오래 보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머리에 벌레 생긴다고 했어"

"머리에 벌레 생기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머리 아프고 공부도 못하고 생각도 못한다고 했어"

"그러면 시언이 가 보고 싶다고 다 보여주는 엄마는 좋은 엄마야 나쁜 엄마야?

"나쁜 엄마야"

"그래 엄마 나쁜 엄마 하기 싫어"

"싫어 그래도 더 볼 거야"

"대신 우리 종이 오리기 할까?"

"음..... 좋아~!, 엄마 그러면 만화는 내일 또 보여줘"

"그래, 내일 또 재미있게 보자"


화내기는 쉽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쁜 엄마, 좋은 엄마는 동전의 앞뒷면 같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건 위험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싶어서 아이의 숨통을 조일 때도 많다.

요즘은 아이와 대치상황에 놓일 때 생각이 많아진다.

무턱대고 화내고 으름장 놓았던 이전과는 달리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라고 있고 인정하기 싫지만 성마른 나의 모습을 너무 빠르게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 내가 맞고 내 맘대로 해도 된다 생각했던 착각 때문에 생긴 일이다.


둘째가 생기니 첫째는 내 거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엄마가 자신에게 하는 그대로 둘째에게 가서 실험을 한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첫째의 성실한 마루타가 되어서 시시때때로 괴롭힘을 당한다.


"왜 말을 안 들어! 이거 하면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조용히 해, 시끄러워!"

"너, 혼나 볼래?!"


둘째에게 소리치는 첫째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익숙한 어조와 워딩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아이에게야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맘속으로는 아, 내가 애한테 뭘 한 거지 싶어 얼굴이 화끈거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돌려놔야 하나 싶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던 말과 행동을 아이의 눈으로 비춰보니 성질 나쁜 고약한 엄마가 나왔다.


감정적으로 대하니 아이도 나에게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예쁘게 말해야지"를 입에 달고 사는데 아이가 읊어대는 내 말은 예쁘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 이 순간 아이에게 가르쳐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에 집중하기로 한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인데 이 아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알고 있지도 못하는 것 같아 요즘은 사실 좀 괴롭다.

미운 네 살도 이 아이와 내 인생에서 단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지나가면 아쉬워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이미 가위로 오려버린 색종이 같은 것이다.


아이의 모든 순간에 좋은 엄마로 남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의 모든 순간에 자기편에 서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고 싶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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