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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Jan 07. 2024

30대의 삶 - 9

레버리지는 똥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아니 이런 것까지 해준다고?' 싶은 서비스들이 너무나도 많다.

회당 3만 원에 집을 깨끗이 청소해 주는 서비스, 무엇이든 주문하면 몇 시간도 안되어 집 앞에 배송되는 서비스, 요즘 엄청나게 유행 중인 반려동물 유치원은 아침저녁으로 픽업 서비스까지 제공을 하며, 내가 업장에서 판매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한 달 정기 결제를 하면 주문자의 체형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여 정기적으로 식단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도 그러하다.


그중 가장 충격적이고 신선했던 서비스로는 바로 '오늘수거'라는 서비스이다.

우리 사무실에서 이용 중인 서비스로, 강남구에서만 운영 중인 것으로 아는데 (정확한 사실은 모름) 신청을 하면 50리터짜리 플라스틱 수거함에 검은색 봉투를 씌워서 문 앞에 놓아준다. 이용자는 그 안에 생활에서 발생된 모든 쓰레기를 분리 없이 담아두고 가득 차면 수거 신청을 한다. 그러면 해당 폐기물을 알아서 수거해 주는 서비스이다.


처음 해당 서비스를 마주했을 때 다소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분리수거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영위해 온 루틴이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도 분리배출은 당연시되던 행위였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넘어 플라스틱, 유리, 스티로폼 등 온갖 폐기물을 분리도 없이 모두 섞어서 배출해도 그것을 알아서 처리해 준다니. 돈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수거함에 무언가를 폐기할 때마다 다소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거 이래도 되나 싶은. 특히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남은 음식물과 배달 용기를 고대로 넣었을 때 느꼈던 죄의식과 일탈의 감각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먹고사는 것 말고도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을 떠올리면 '레버리지' 서비스들은 정말이지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듣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한번 이용하면 그 편리성에 중독되기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이용 중인 서비스는 '쿠팡' 그리고 '런드리고' 두 가지이다. 그 두 가지가 없는 삶을 상상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 자주 이용한다. 심지어 서비스 품질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냥저냥 넘어가기도 한다. 쿠팡 프레시에서 주문하는 신선 식품들의 품질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두 번 시키면 한 번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빈번하게 품질이 떨어진다. 그러나 그러려니 하게 된다. 내가 구매한 재화의 자체적인 품질을 떠나 서비스 자체의 품질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전날 오후 11시에 주문한 게 다음날 새벽에 배송이 된다니. 그만큼 이 '레버리지' 서비스에 한번 매료되면 서비스 품질을 막론하고 그 안에서 거하게 된다.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말이다.


나는 중독에 취약한 편이다. 무엇이든 한 번의 경험으로 장점을 체험하고 나면, 그것의 부작용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는 한 좀처럼 끊어내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 없는 삶은 꿈도 꾸기 싫고, 담배 없는 삶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아득하고, 술 없는 주말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물음표부터 그려진다. 그래서 나는 주변의 많은 추천을 받고 있는 다양한 레버리지 서비스의 이용만큼은 되도록 제한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늘 흔들리는 서비스 중 하나는 청소 서비스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집청소를 한다. 끽해봐야 10평 남짓한 원룸인데 청소기질, 물걸레질과 마른 걸레질, 화장실과 샤워실의 락스청소까지 모두 마치고 나면 3시간은 이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 집청소를 앞두고 나는 늘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 안 그래도 피곤에 쩌들어있는 육체의 유일한 안식일인 일요일에 황금 같은 시간 중 3시간씩이나 소비하며 집청소를 하는 게 과연 맞을까. 그 시간에 내 사업체 관련 업무를 정리 정돈하는 게 큰 이득이 아닐까 싶은 유혹과 싸운다. 그래서 청소를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 까지도 참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편리 위주의 삶이 너무 익숙해졌다.

나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불편과 보상 지연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갈수록 참을성이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분노하는 일이 많아지고, 사회는 점점 폭력성을 짙게 띄는 양상이 만들어진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쏟아지는 범죄 소식들의 배경은 모두 '분노'이다. 나는 그렇게 도파민을 제한하겠답시고 일에 치이는 바쁜 삶을 추구하는데도 삶의 곳곳에 잠깐 틈만 생겨도 여전히 카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소비하느라 내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답답한 것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이런 분노의 양상에는 편리를 추구하는 사회의 영향이 막대하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내 삶에 노출된 다양한 레버리지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나에 대한 메타인지가 불명확해진고 내가 마치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거처럼 어느 수준 이상의 대우를 받아야만 될 것 같은 기분에 매료되는데 나는 그 기분이 다소 섬뜩하다.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애송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노동들이 주는 신비로운 경험이 있다. 하루종일 업무 관련 이슈때문에 신음하다가 아무 연관도 없는 청소나 운동을 하다가 고민이 정돈되었던 적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해야 하는 일을 포기하고 되려 일을 하겠다고 자리에 앉아서 몇 시간을 휴대폰이나 들락거리며 시간을 낭비한 적이 더 많다.


사람은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잘하는 것에 백방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삶의 다양한 실패를 줄여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쌓고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올바른 기능하는 사명감이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표방하는 편리 위주의 삶이 인간의 기능을 무너뜨리기 무척이나 쉽다. 사회에서는 개개인에게 다양한 역할이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기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삶에 주어진 다양한 불편함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사명중 하나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의식과 소명을 다하는 것이 나는 레버리지 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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