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첫 이별

아들 하나 키운 이야기

by insaengwriting


아들의 첫 번째 사교육, 어린이집 그리고 첫 이별


아들이 15개월 되었을 때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했고 거기엔 세 가지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혼자 자라는 아들에게 사회성을 키워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코알라처럼 엄마만 찾고 따르는 아들에게 또래 아이들과도 어울리는 법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호주에서 태어났어도 부모의 말인 한국말을 먼저 배워하는 아들에게 평생 쓰고 배워야 할 영어 교육은 처음부터 정확한 발음과 악센트를 배우길 원했다. 집에서 한국말을 쓰니 아들은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배웠고 빠르게 늘어갔지만 나는 영어는 할 수 있었지만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세 번째 이유는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고 나의 도움 요청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남편 사업을 돕기 시작했고 아들은 15개월부터 집 근처 리틀엔젤스 사립 유치원을 보냈다..


유치원 첫날, 첫 번째 이별은 굉장했었다.


유치원 입학 수속을 마친 후 주말을 보내며 여러 차례 아들에게 유치원에서 만날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많은 놀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며, 엄마는 아들이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동안 아빠 회사에서 잠깐 동안 아빠를 도와주고 금방 데리러 갈 거라고, 엄마가 데리러 가면 아들은 아마 유치원에서 점심을 먹거나 먹으려고 준비하는 시간쯤 될 거라고 차근차근 설명해주며 아들을 설득시켰다.


유치원 첫날 선생님들과 교실 앞에서 짧은 인사를 나누며 아들을 건네주는 순간 아들이 발버둥 치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을 선생님은 안아 들었고 나는 등 돌려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유치원 복도를 빠져나왔다. 그때 생각을 하니 지금도 울컥한다. 유치원 입학 상담을 받으며 원장님과 담당 선생님의 충분한 조언과 충고가 있었기에 전날 아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었지만 첫 이별은 무척 힘들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유치원을 빠져나와 차에서 잠시 울며 마음을 추슬렀던 기억이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있다.


그날을 시작으로 아들은 아침마다 유치원에 도착해서 담당 선생님을 보는 순간부터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일주일에 5일 서너 시간씩 유치원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아침 아들을 보면 안아주고 달래주는 담임 선생님 헨런이 있었고, 아침 나와의 이별 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울지 않고 너무 잘 지냈기에 유치원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보낸 몇 주 만에 유치원에서는 아들을 해피 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질 만큼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했다. 하지만 아들은 3년 넘게 한 번도 빠짐없이 나와 떨어질 때는 아침마다 울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15개월밖에 안된 어린아이지만 어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고 영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유치원에 맡기려는 엄마에게 울음으로 죄책감을 줄 수 있는 본능적으로 영리함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아들 찰리가 그랬었다. 유치원 첫날부터 초등학교 시작 전까지 거의 3년 넘게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유치원 가는 날에 울며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아들 찰리는 자신을 떼어놓고 돌아서는 엄마에게 죄책감을 주었지만 정작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그때부터 눈물 닦고 행복한 아이로 자신을 찾으며 유치원 생활을 했다. 찰리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을 한다고 했으며 그래서 나에게 찰리를 떼놓고는 뒤돌아보지 말고 유치원을 빠져나가라고 충고해 준 것이었다.


아이를 처음 떼어 놓을 때


엄마들에게, 일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어떤 순간 마음은 아파도 용기 내어 강한 엄마다운 선택을, 아이를 위해서 해야만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아이에게 엄마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면, 아이의 홀로서기 첫 시도에서 과감히 아이를 품에서 떨어뜨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부모가 주었다면 아이는 분명 잘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들 찰리가 한 것처럼 잘하는 아이도 있겠지만 분명 아직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떼어 놓고 보면 유치원에서도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엄마를 찾는다면 이런 아이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엄마가 일 년 더 돌봐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울며 엄마를 떨어지기 힘들어하는 아이일지라도 유치원을 꼭 가야 하거나, 시도해 보고 싶다면 엄마가 일주일 정도 아이와 같이 유치원을 다니면서 봉사를 하며 아이가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해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유치원 생활


어린 찰리가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보낸 첫 번째 이유이자 목표였었다. 형제 없이 혼자인 찰리에게 어울려 살며 나눠 쓰는 것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나는 오전 근무만 하고 유치원에 일찍 가서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하며 유치원 선생님들을 도왔고 찰리와 아이들을 지켜보며 유치원에서 몇 시간씩 찰리를 지켜보며 놀게 해 준 다음 데리고 집으로 왔다. 유치원에서 지켜보는 내내 아들 찰리는 선생님들이 불러주는 애칭처럼 행복해 보였다. 친구들과 장난감 가지고 놀면서 다툼도 없었고 자신의 것을 빼앗겨도, 못하게 되어도 칭얼거림도 없이 다른 걸 찾으며 즐겁게 지냈고 선생들의 영어 말을 곧잘 알아듣고 행동했고 많은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이 보였다.


유치원에서 일어난 사고


어느 날 유치원에 갔더니 헨런 선생님이 미안해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며 나를 맞아 주셨다. 헨렌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걱정을 하던 중 찰리가 뛰어나와 안겼다. 눈물 자국 짙은 찰리의 왼쪽 볼에 동그란 잇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물렸을 때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어떤 아이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이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헨렌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의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날은 유치원에서 일 년을 마치는 마지막 행사로 유치원 아이들의 개인 사진 및 반 단체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찰리가 개인 사진을 찍고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볼을 물었다고 했다. 나는 찰리를 깨문 아이의 심정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들이 손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가 됐고 평소보다 아이들의 개인 움직임이 많고 들쑥날쑥 하니 선생님들은 눈도 마음도 몇 배는 더 바빴을 것도 이해가 됐었다.


내 아이가 다쳤지만 그걸 선생님들에게 책임지라며 누군가의 잘못을 따져 묻고 싶지 않았다. 사고란 항상 갑자기 생기는 법이고 심해 보였지만 더 심하게 다치진 않았기에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옆자리 친구에게 물린 찰리의 반응과 행동, 그리고 선생님들이 대처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얼굴에 난 상처 소독은 했는지 약은 발랐는지를 추가로 물었다. 특히 나는 집에선 볼 수 없는 내 아들의 행동을 알고 싶었다. 선생님들의 설명에는 찰리가 물렸을 때 아파서 크게 울었지만 선생님들의 달램에 쉽게 진정이 되었고 자신을 물은 아이를 밀치거나 때리는 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처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날은 일찍 유치원을 나와 주치의를 찾아가 찰리의 상처를 보이고 추가 치료를 받고 약을 타서 집으로 갔었다.


사고에 대한 엄마의 반응


나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많을 겪게 될 것이다. 이때 부모가, 엄마가 나의 감정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은 아프고 어떨 땐 화도 나겠지만 엄마라면 침착하게 대응, 대처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어린아이들은 제일 먼저 엄마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아이는 사건 사고가 생겨 당황해 있을 때에는 더욱더 엄마에게 집중하게 되어 있다. 그때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처리 방식 등 모든 것들을 나의 아이는 하나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쉽게 생각하지 말고 어렵게 생각하자. 우리의 아이를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고 나의 행동과 말로 모범을 보여 주며 키우자.



아들과 엄마의 시간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집에서는 어린 찰리의 취미생활인 코알라 본능을 마음껏 하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들이 그날 하루 유치원 생활에서 듣고 배운 노래, 이야기, 춤, 놀이 등 모든 기억을 다시 상기시켜주며 들어주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아이가 오늘 신나게 떠드는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나 춤을 나도 아이를 따라 하며 배우려고 노력했다. 들어주면서 아이도 나에게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나의 이야기도 꺼내며 서로 대화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시도했었다. 엄마는 무슨 일을 했고, 아들이 정말 보고 싶었지만 참고 일을 열심히 했다는 말도 해주며 서로 각각 따로 보낸 시간들을 비교하며 떨어져 더욱 보고 싶었다는 것도 상기시키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주말 중 하루는 아이와 함께 장소를 따지지 않고 신나게 하루 종일 지치도록 뛰어놀아줬다. 함께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아이에게만 집중해서 아이의 작은 변화를 보고 느끼며 성장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나는 아이와 놀아줄 때 원칙이 있다. 온전히 아이에게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었고 그리고 아들에게서 눈을 절대 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로 아이가 지칠 때까지, 아이의 입에서 먼저 '힘들어 그만 놀래'라고 할 때까지 했었다. 나의 스케줄에 아이를 잠시 끼워 넣는 식이 아니라 이때만큼은 아이의 흐름에 맞게 시간을 투자했었다. 하루를 통째로 내줄 수 없는 날이었다면 최소한 한 가지 놀이만이라도 아들이 지칠 때까지 놀아 주거나, 기다려주었다.


어떨 땐 사정이 생겨 같이 놀아주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혼자 놀고 있는 아이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고 눈으로 계속 좇으며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며 같이 해 주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아이와 눈 마주침을 통해 함께 웃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듯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함께 해 주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혼자 놀다 가고 아이는 여러 차례 엄마를 쳐다본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눈 마주침이 없는 것은 각자 따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같이 해주거나 그러지 못할 때도 시선으로 쫒으며 해 주는 눈 마주침은 아주 중요하다. 나의 아들은 눈 마주침으로 행복감과 안정감을 얻었고 또한 엄마의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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