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스쿨부터 초등 3학년 이야기

아들 하나 키운 이야기

by insaengwriting


만 4살 프리스쿨 입학


리틀 엔젤스를 마치고 초등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리 스쿨 과정을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여기서는 규칙적인 초등학교 생활을 위한 준비과정을 배우는 곳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연필 잡는 법과 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며 손가락 힘을 길러주고 학교의 시간표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배우는 교육과정이었다. 이때부터 변화가 찾아왔다. 아들은 더 이상 아침에 울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가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엄마와 떨어지지 않고 엄마를 따라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거의 매일 아침 결석을 시도했지만, 꼭 가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수업을 마치면 엄마는 항상 일찍 데리러 온다는 것도 알았기에 이때부터 아침마다 보여줬던 눈물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배움의 습득 시간


아이에게는 배움의 습득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만 4살이 지나 프리 스쿨에 입학하게 된 아들에게 나는 시간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시계를 보면 엄마가 데리러 올 시간이며 학교 갈 시간을 초조해하지 않고 혼자 스스로 보며 알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가르치는 것을 완전 실패했다. 시계 보는 방법을 아이에게 전해 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려 했었지만 아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웃으며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 후 일 년이 지나자 아들이 시간에 호기심을 느끼며 시간 읽는 법을 나에게 알려 달라고 먼저 물어왔다. 이때 시간 보는 법을 일 년 전과 똑같이 가르쳤는데 단 몇 번만에 시간을 이해했고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궁금해 스스로 물어올 때 그때가 가르쳐야 하는 시간이고 이해와 습득이 빠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날 교실에서 도망치다


사립학교 킹스 크리스천 칼리지에 입학식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들이 각자 반 아이들을 줄 세워 교실로 데리고 갔다. 아이들이 각자 반으로 선생님을 따라갔고 학부모들은 그 뒤를 따라 교실까지 같이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들은 멀찍이 지켜보며 교실을 확인하고 교실 근처에 있는 학교 카페에서 아들 교실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곳으로 갔었다. 학교 카페에 앉아 교실 안을 내려다보니 교실 안에 앉아 있는 아들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아들과 눈이 마주쳤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들은 울며 교실을 뛰쳐나와 나에게로 향했다. 그 뒤로 담임 선생님이 쫒아오는 등 입학 첫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하지만 나의 말을 듣고 안정을 찾은 아들은 뒤에 따라온 선생님과 함께 다시 교실로 돌아갔고 우리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이것이 아들의 마지막 아기 울음이었던 것 같다. 첫날은 하교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교실 밖에서 아들이 수업받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수업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침에 그런 해프닝이 있은 뒤 아들은 전혀 문제없이 하루 종일 수업을 잘 받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역시 해피 보이라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날부터는 아들을 스쿨버스를 태워 보냈고 그런 뒤 아들의 코알라 증후군 울음은 완전히 사라졌고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첫날 해프닝을 같이 지켜보시던 친정 엄마는 저런 '초등학교 입학한 날 교실을 도망치던 놈이 공부는 제대로 할까 했는데 언제 의사가 됐니' 하시며 지금도 웃으신다. 요즘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시며 손자도 놀리시며 즐거워하신다.


나는 일이 바빴다.


초등학교 일 학년, 이때 나는 아이에게 신경을 크게 쓸 수가 없었다.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무모한 사업 확장을 했고 그래서 나는 정신없이 일을 하며 지냈던 시기였다. 그랬음에도 아들은 학교 생활을 너무 잘 적응해 주었고 어느 순간 영어를 잘 읽고 쓰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억에 없었다. 집에서 공부를 도와준 기억도 없었고 그 당시엔 남편 사업적으로 다른 많은 것들을 혼자 처리하느라 바빠서 아들에게는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아들은 스쿨버스를 이용했으며 하교 때는 남편 회사로 스쿨버스를 타고 와서 일을 하는 내 옆에서 아들은 학교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나는 아들에게 학교 생활은 즐겁게, 재미있게, 열심히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었고 아들은 쉴 새 없이 쫑알거리며 하루 종일 있었던 학교 생활을 알려주었다.


대화의 중요성


어릴 적부터 하루를 보낸 뒤 우리는 자신이 보낸 하루에 대해 대화하는 습관이 길러져 있었기에 아들은 지금까지도 자신에게 생긴 일들을 이야기하고 나의 하루도 물어봐주는 것을 습관처럼 가지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후부터 나에겐 암흑의 시간들이 찾아들었다. 경험 없는 확장으로 남편 사업들이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그걸 감당하지 못하는 남편은 다른 지역으로 혼자 도피해 버렸고, 사업과 장사에는 소질이 없는 나는 그를 대신해 정리하다 보니 나는 이때 아들과 보낸 시간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살았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내 아들, 찰리와의 시간을 일정 부분 놓쳐 버린 것이 너무 아쉽게 지금도 남는다. 특히 언제, 어느 순간에 아들이 영어를 잘 쓰고 읽게 되었는지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알게 되어 여전히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학교 수업으로도 충분하다.


어릴 적에는 학교 수업만으로도 공부는 충분하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아이들 학업에 관여하여 부담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글을 가르치고 싶어서 몇 번 기억, 니은, 디긋 하며 한글 읽는 법을 가르치려다 실패를 했다. 이때는 한글 읽는 법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영어를 막 쓰고 배우던 때라 아직 아들의 머릿속에 두 개가 겹쳐 들어가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아들은 영어 읽는 법과 소리에 맞춰 스펠링 쓰는 법을 완전히 터득했고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자 그때서야 아들은 한글 읽는 법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며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영어에서 배운 기법을 이용해서 혼자서 쉽게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배움에도 다 순서가 있고 때가 있다는 것을 말을 해주고 싶다.



초등 공립학교 2학년으로 옮겼다.


모든 사업이 망해서 넘겼고 남편은 도망치듯 다른 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더 멀리 도망치며 가족사업 꿈꾼다는 남편이 갑작스러운 한국행 결정으로 그를 말릴 수가 없었고 그렇게 남편은 한국으로 떠나갔다. 그때부터는 나라가 다르니 완전 싱글마더 아닌 싱글마더처럼 나 혼자 아들을 키우며 나와 아들, 우리 둘만의 호주 생활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들의 학교를 집 근처로 옮겼고 집 근처엔 사립학교가 없었고 돈도 없었다. 이때부터 호주 서퍼스 파라다이스 공립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게 되었다. 코알라였던 아들은 울음은 사라졌지만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다른 불안 증세가 눈에 보였었다. 매년 새로 맞는 담임 선생님, 어른들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유치원에서도 매년 바뀌는 담임 선생님에 대해 예민했었지만 초등학교 들어서는 특히 더 불안해하는 아들에게 나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며 아들을 안심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선생님 말고는 학교가 바뀌는 것과 친구가 바뀌는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안심하며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분리 불안증세


초등학교 2학년 만 6살도 되기 전에 아들 찰리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 텀이 끝나기도 전에 2년 동안 유학을 끝내고 언니가 조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 시기와 비슷하게 남편도 호주를 떠났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 남게 되자 갑자기 쑥쑥 빠져나간 가족 멤버들에서 오는 허전함과 불안감을 아들은 나에게까지 연결시켜 불안 증세를 보였다. 엄마도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들은 다시 코알라로 돌아오고 싶어 하며 학교 가기를 거부했다. 이유도 그럴듯했다. '내가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엄마 혼자 운전 중 교통사고가 나거나 사고로 죽어서 자기를 데리러 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는 등의 구체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나와 떨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아들의 불안증세로 아침마다 우리 집은 울음의 전쟁터가 되었다. 달래서 학교를 보내려는 나와 가지 않으려는 아들은 학교에 가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유치원 때보다 심하게 매달려 나도 힘들었다. 그래서 학교에 부탁을 했고 나이 지긋하신 부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우릴 도와주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적극적인 협조를 받았다. 매일 아침 부교장 선생님의 따듯한 설명과 도움으로 아들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엄마인 나도 상담을 해주셨다. 아들도 힘들었지만 강한척했던 나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미술 전공을 살렸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부터 사범대 미술 교육 전공을 살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돕기 시작했다. 우선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읽기 도움 자원봉사를 지원했고 바로 투입되어 초등 일 학년과 이 학년 아이들 중 배움이 느린 아이들에게 영어 읽는 법을 도와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아들과 같이 아침에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영어 읽기 지원을 하며 학교에 있었고 그런 다음 수업이 마치면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교실에서 친구들의 영어 읽기를 도와줬던 적이 많고 학교에 항상 있는 것을 알기에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고 나와 단둘의 생활에도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변화를 숨기지 말자.


가끔 우리 어른들은 살다가 몇 번의 큰 변화를 맞는다. 변화를 갖는 어른도, 아이도 무척 혼란스러울 것이다. 가족관계에 생기는 변화는 어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이야기하고 함께 변화를 맞으며, 대처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혹시 '뭘 그런 말을 아이에게 하겠어' 하고 의심한다면 그렇게 하시라. 단 아이에게 평생 숨길 수 있다고 장담하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아이가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라면 변화가 생겼을 때 힘들어도 아이와 이야기를 해야 하고 함께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 관계 변화나 삶의 방식 변화에 대해서는 아이도 충분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변화가 생긴 이유와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시킨 다음 변화가 우리들 삶에 가져올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 바란다. 나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아들의 도움을 일상에서 여러모로 받을 수 있었고 우리는 뭐든지 서로 터 놓는 관계가 되었고 항상 든든한 조력자로 옆에 있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들과 나는 이런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찰리는 3학년 때부터 악기를 하나 시작했다. 학교에서 뽑는 현악부에 가입하여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통지서를 들고 와서 아들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현악부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을 먼저 해왔었다. 이미 찰리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생각과 결정으로 찰리에게 사립 학비 외 추가 돈을 들여 바이올린 레슨을 함께 넣었었다. 학교에서 총괄하지만 개인 레슨이기에 교실에서 불려 나가 작은 음악 레슨실로 옮겨가야 했고 레슨실로 간 찰리를 선생님이 잊었는지 혼차 아이를 그 방에 한참 동안 방치해 둔 적이 있었다. 작은 레슨실 방에서 혼자 선생님을 기다리다 겁을 먹고 다음 아이에 의해 다시 교실로 돌아오게 된 찰리는 그때부터 바이올린 레슨을 포기했다. 그래서 바이올린과의 인연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었는데 3학년이 되자 바이올린을 다시 배우고 싶어 했고 나는 응원해 주었다.


여기 공립학교에서는 사립학교 때와는 다르게 학교 현악 부이기에 부모는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사주거나 학교에서 악기를 렌트하면 현악기 레슨은 공짜로 시켜줬기에 더욱 좋았다. 나는 바이올린 4분에 3 사이즈를 중고로 구매해서 찰리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개인 레슨과 수업 시작 전과 수업 마친 후에 한 번씩 또래 아이들과의 단체 레슨과 전체 현악부 레슨을 받으며 일 년에 한 번 퀸스랜드 주에서 주체하는 초등학교 현악부 공연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현악부에서 하는 일이었다. 바이올린은 처음에는 인내심이 많은 필요로 하는 악기였다. 바이올린을 켜는 이도, 그 소리를 듣는 이에게도 인내심을 요구하는 악기였고 찰리의 바이올린 소리는 일 년 정도 지나자 인내심 없이도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다시 한번 엄마 욕심으로 아이에게 배움을 강요할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아이가 호기심이나 관심을 보일 때 그럴 때를 놓치지 말고 잘 판단해서 허락만 해주면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관심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악기는 특히 바이올린은 좋은 소리를 금방 내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도, 부모도 쉽게 흥미를 잃고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악기를 배우는 것이 단지 소리 내는 법만 배우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내가 아들에게 했었던 이야기는 사람들은 주로 한 손을 많이 쓰는데 너는 양손 쓰는 법을 배우니 얼마나 좋으며,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연습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악기를 하기 위해서는 소리뿐만이 아니라 그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적어 놓은 악보 읽는 법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악보 읽는 법을 먼저 배우면서 바이올린을 자주 연습하면 시간이 지나면 좋은 소리가 나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새로운 것을 하나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꾸준히 노력하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아들에게 설명하며 이해시켰고 하는 동안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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