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였던 아기가 의사 되기까지

아들 하나 키운 이야기

by insaengwriting


임신


호주 시드니에서 3년째 살고 있다가 계획에 없었던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임신이었다면 마냥 기뻐할 수 도 있었지만 호주로 와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임신을 미룬 상태였기에 덜컹 마음이 내려앉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다행히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있어서 배려로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일을 하고 출산 휴가 후 다시 일을 해주길 바랬지만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타국 생활이라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나는 오직 혼자서 육아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 기간 동안은 나는 순조로웠다. 밥 세끼를 그냥 먹었다. 크게 먹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 심하게 임신 후유증도 없었다. 단지 머릿속에서 음식들이 사라진 것처럼 뭘 먹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숯불구이를 먹고 오면 밤새 토해내느라 화장실 변기를 잡고 울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야채를 많이 먹다 보니 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 딸일 거라고 하셨다. 시기가 되어 성별 검사를 했지만 아기가 다리를 꽉 꼬고 있어 살펴보다 포기를 했다. 그저 성별에 상관없이 무사히 건강하게만 나오길 바랬었다.


임신을 해서는 바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관한 책을 두권 사서 임신기간 내내 읽으며 나의 몸의 변화를 책과 비교하며 이해했고 출산의 두려움도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출산 후 육아도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변화를 비교하고 알아가면서 하나하나 혼자 배우며 아들 하나를 키워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무지하고, 어설펐지만 두 권의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최선을 다하는 노력꾼 초보 엄마였다고 자신한다.


양수가 먼저 터지고 병원으로


임신 말기에 잠을 자는데 뭔가 아랫배에서 물결이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침대에서 일어나 서니 양수가 터져 나와 새벽 3시에 병원 비상벨을 눌러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 리셉션에 도착해서 설명을 하는 도중 다시 한번 크게 양수가 터졌다. 다가오는 간호사들이 양수가 터졌다며 환호하며 환영해주는 분위기라 무안함도, 어색함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Womam's hospital 입원했고 첫날에는 진통도 전혀 없었다. 다만 양수가 터진 것이었지만 그날 밤부터는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배로 오는 진통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허리로 오는 진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허리로 진통이 올 때마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드디어 분만실로 가다.


그렇게 병원에서 3일을 보냈지만 진통이 정기적인 간격으로 오지 않았고 진통은 점점 허리로만 왔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술을 원했고 마지막으로 담당의사가 와서 수 진단을 해서 문이 열렸다고 입원실에서 분만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분만실로 올라가니 아이의 자세가 똑바로 서있는 상태라 자연 분만할 수 없다는 진단으로 우선 척추마취를 해서 한쪽 방향으로 가만히 누워 있으며 아이가 자세를 바꾸어주길 기다렸다. 척추마취를 하고 잠시 진통이 없어지자 모처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다 벼락같은 진통으로 잠이 깨었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 전날 맞았던 척추 마취가 사라졌고 진통이 다시 많은 진통을 겪으며 새벽 5시에 아들을 자연 분만했다.


탄생, 아들이다.


태어난 아기를 바로 가슴에 위에 올려주었다. 아기와 나의 심장이 처음 닿아 함께 뛰는 순간이었다. 그냥 울음이 났다. 진통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배 위에 올려 두었던 아기를 비타민 주사를 준다고 간호사가 한번 아주 잠깐 데려갔다 다시 데려와서부터는 퇴원 때까지 아이는 엄마인 나와 함께 쭉 있었다. 아들은 침대 옆에 아기 담는 통에 넣어 두고 어디를 데리고 다니든 절대 안고 다니지 말고 아기 바구니를 끌고 다니라고 했다. 호주 병원에서는 신생아를 절대 어른이 안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신생아를 안고 다니다 떨어뜨리는 사고를 방지함이라고 했다.


첫인상은 낯섦


그 당시 호주에서는 자연분만과 수유를 적극 권장하던 시절이었다.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들어와서 아이와 단둘이 되자 나는 침대에 앉아 옆에 있는 아기를 내려다봤다. 처음으로 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척 낯설었다. 아기를 낳으면 바로 사랑이 싹터서 미친 듯이 아기가 이쁠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태어난 아기는 아직 목욕도 하지 않고 부은 얼굴이고 눈도 감고 있어 못생겼음에 속으로 놀랬다. 아마 나는 인형같이 예쁜 아기를 기대했었던 모양이었다. 실망감을 감추고 아기를 찬찬히 뜯어보며 이마와 눈과 코와 입 모든 얼굴 비율을 따져보니 아기가 모든 곳의 비율이 적당했다. 그러면서 석고상 아그리파 닮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병원에서 수유와 목욕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아이를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으니 간호사가 들어와 내가 첫 번째 아기임을 확인하고 수유법을 가르쳐주었다. 어떻게 수유를 해야 하는지 자세부터 방법까지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면서 아직 밀크가 나오지 않지만 아기에게 자주 수유를 시도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양쪽 손목에 문제가 생겨 숟가락을 들어도 아프다고 하니 간호사는 누워서 수유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며 아기를 바구니에서 꺼내어 내 침대 옆으로 바로 옮겨 주었다. 간호사들은 매우 노련하고 무척 친절했다. 다음 날에는 간호사가 와서 안전하게 아기 목욕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출산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아침마다 숙제처럼 내일 먹을 아침, 점심, 저녁을 체크해서 적어내야 했다. 그래서 기회다 싶어 그동안 먹어보지 않은 종류의 시리얼을 시도해보았다


퇴원, 미드와이프


7일 있을 수 있는데 4일 동안만 있고 일찍 퇴원해서 미드와이프를 배정받았다. 미드와이프는 집으로 일주일 정도 매일 방문을 해주며 아이의 상태와 산모의 상태를 챙겨 주는 고마운 시스템이었다.


베이비 찰리 - '아기가 손탄다'


퇴원해서 집으로 데리고 온 아기는 일찍이 엄마 손을 탔다. 솔직히 고의로 그렇게 손을 타게 만들었다. '많이 안아주는 아기의 지능이 더욱 발달한다'라는 글 한 줄의 힘이었다. 바로 옆집조차 젖먹이 아기가 우리 집에 있는 줄 몰랐을 정도로 찰리는 울지 않는 순한 아기였다. 모유 수유는 아기의 면역력과 정서에도 좋다는 것을 책으로 먼저 알고 있었기에 나는 모유수유를 하려고 이미 결심했고, 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나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첫 모유 수유법을 배웠고 그 후 2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나는 모유 수유를 시작하고 찰리를 웬만하면 혼자 눕혀 놓지 않았다. 찰리가 잠에 푹 떨어진 상태가 아니면 항상 안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나 노래를 불러주었고, 표현하지 못하는 아기 마음을 읽기 위해 항상 눈과 표정을 살폈다.


임신과 육아를 책으로 배운 사람답게 책에서 주는 좋은 정보들은 반드시 실천으로 옮겼고, 그중에서 특히 '많이 안아주며 이야기해주는 아기가 영리해진다'라는 정보는 내가 아기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보가 실천에 옮겼다. 그렇게 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아기 찰리가 사람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코알라가 되어버려 엄마인 나 외에는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 생활이라 가족의 도움이 없었고 나는 당연히 아들 돌보는 일에만 집중해서 이 정도 부작용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어린 젖먹이 아기들의 행동 방식은 엄마를 그대로 닮는 것 같았다. 나의 아들 찰리가 그랬었다. 일찍 자고 일어나고 아침형 인간인 나의 습관과 똑같이 맞추어져서 좋았다.


부작용으로 얻은 굵어진 팔뚝


아들이 커서는 가끔 그 당시 아들이 얼마나 엄마를 좋아하는 코알라였다는 것을 이야기하다 나의 팔뚝을 보여주며 "이게 다 그 때문에 얻은 거야. 웬만한 아가씨들 허벅 지지, 이런 팔뚝으로는 민소매는 아예 못 입지."라고 한숨을 섞어 아들에게 투정을 부려본다. 그러면 아들은 미안한 듯 웃으며 "고마워요 엄마"하며 툭 기대며 안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