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북으로 올라가 버린 월북미술인에 대한 자료를 읽다 보면, 의외로 이들의 월북 이유가 이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이들 다수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기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전쟁 시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종전 협정 체결 이후, 북으로 송환된 포로들의 경우도 비슷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화가 이쾌대는 인민군으로 오인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는 아내에게 전쟁의 포화가 사라지면 다시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자는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마음은 이미 가족들과 안방에 함께 있는 것 같다고 썼다. 그러나 이쾌대는 아내와의 약속과는 달리, 남쪽의 가족을 둔 채, 북행을 선택한다.
고향이 남한인 데다가, 아내와 아이가 서울에 살고 있었던 그는 왜 포로 송환 당시에 북쪽을 선택했던 걸까. 이쾌대와 함께 수용되어 있던 이의 증언에 따르면, 이쾌대의 선택은 '이념'이 아니라 '상황'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와 나뉘어,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때 이쾌대는 반공 포로들의 협박을 받고 있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북을 선택해야 했다. 이러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었다고 한다.
이쾌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안의 상황은 복잡했다. 이러한 상황을 잘 담아낸 영화가, 바로 영화 <스윙키즈>이다. 감독은 자유의 여신상 조형물을 배경으로 춤을 추고 있는 반공 포로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소재 삼아, 한국전쟁 포로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포로수용소 안에서는 매일 밤마다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 간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너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건데?"라고 묻는다. 외세의 침입도 아닌,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자료 열람실 데스크에 관련 자료 열람을 신청했다. 박스를 열자, A4 크기의 종이가 두툼하게 묶인 서명지가 나왔다.
정전협정이 체결될 시, 북으로 송환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이 첫 장에 있었다. 이어 그 뒤로 700여 명의 포로가 각자의 수감 번호와 사인을 한 서명지가 이어졌다. 서명지의 표지에는 '혈서결의문'라고 쓰여 있었다. '리대통령 만세', '멸공'이라고 쓰여 있던 글씨들은 포로 각자가 자신들의 피로 쓴 것들이었다. 70여 년 전에 피로 쓰인 글씨는 색이 바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박스에서 이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겨 봤다. 영화 <스윙키즈>에서 '반동분자'라고 지칭되던 이들이 남긴 문서였다. 1953년 여름, 거제도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포로들이 작성한 이 서명지는 당시 수용소를 관리하던 미군에 의해 현재 미국에 보관 중이었다.
북송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혈서 서명지는 이미 한국전쟁 연구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던 자료였다. 나도 언젠가 책에서 본 적이 있던 자료였지만, 실제 사람들의 필적과 혈서의 흔적을 보는 것은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여기에 이름을 남긴 700여 명의 사람들 중,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한에 남게 된 이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이들이 당시 자신들이 쓴 혈서를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