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석사과정생과 박사과정생은 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커리큘럼의 수업을 듣지만, 수업 때 역할이 조금 달랐다. 주제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순서가 되었을 때,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아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가 있었다. 누가 좀 첫 질문의 물꼬를 터줬으면 하는 눈치 싸움이 오가면 으레 박사생들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지도교수가 제안할 때도 있었지만, 본인들 자신도 그 역할에 대해 책무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마친 이에게 피드백하는 일은 글을 쓰고 합평하는 일과도 비슷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지는 않아야 한다는 배려 속에서 질문의 내용과 수준을 정하게 된다. 동료의 연구에 대해 논리적 모순이나 비약 등을 집중적으로 늘어놓는 경우, 지도교수 앞에서 그 상황을 직면한 대학원생은 일주일 동안 자기 비약의 시간을 보내게 될 터였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그 당사자의 경험을 해 본 적은 있으니, 동료 대학원생의 슬럼프에 기여하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질문은 상대가 자신의 연구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공부해 왔는가를 평가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이 발표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와 관련 분야의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즉 질문은 그의 수준뿐 아니라 나의 수준도 드러내는 요소였다. '좋았다', '참신했다'라는 감상만 나열한 채, 구체적인 논거가 빠진 경우 발표자의 자존감은 높여주었을망정, 그의 연구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상대의 연구를 통해 나는 어떠한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는지, 이 발표는 현재 진행 중인 내 연구에 어떠한 영감을 주었는지를 언급한 후, 나의 연구 내용 중에 그와 접점이 있는 자료를 소개해 주는 전개가 가장 화기애애하게 끝날 수 있는 구성이었다. 선행 연구와 차별화되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을 경우, 그 부분을 부각해서 칭찬해 주는 것도 좋았다.
질문의 방법론은 설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보고 익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리는 박사 선배들의 질문 내용을 들으며 몸으로 익혀갔다. 강의실 안에서 선배 박사의 아우라를 가장 크게 보였던 이는 미정언니였다. 언니는 나처럼 아이를 중학교에 올려 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동기 중에서는 제일 먼저 석사 논문을 완성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마흔 넘어 대학원에 입학한 내가 어린 동기들 사이에서 쭈뼛거리고 있을 때마다, 교수님 연구실에 같이 가 보겠냐, 밥 먹으러 같이 가겠냐며 먼저 말을 걸어와 준 사람이었다. 미정 언니와 우리 집은 비슷한 방향에 있어서 수업이 끝나고 해 질 무렵의 노을을 보며 강변북로에서 도란도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미술사 공부라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다가, 대학원 생활의 갑갑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자식 키우는 일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언니집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중단되는 게 아쉬워서, 언니네 아파트 앞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시동을 끈 채, 대화를 이어간 날들도 있었다. 정 많고 품이 너른 미정언니와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던 때도 종종 있었다. 미정언니는 나의 심신의 안정을 도와주는 선배이기도 했지만, 연구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골고루 배울 수 있는 선배이기도 했다.
언젠가 <근대기 혼성 문화 공간으로서의 금강산과 금강산 그림>이라는 논문의 서평 과제를 받았다. 당시는 2017년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관계가 모처럼 화해 모드가 되었으며, 금강산 관광 재개에 기대가 높아진 때였다. 그때 나는 논문 서평을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장소에 시대적 상황이 결합되면, 장소성을 넘어서는 역사적, 맥락적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현재의 금강산은 ‘민족의 화합과 통일’이라는 키워드로 압축될 수 있는 공간이다. 작년 판문점에서 열린 ‘4.27 남북정상회담’ 장소에 신장식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작품이 배치되어 있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민족의 화합에 대한 염원의 메시지를 그림을 통해 북측에 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지금 금강산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시기의 금강산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해당 논문은 20세기 전반의 금강산에 주목한다. 당시 금강산의 물리적 변화뿐 아니라, 이로 인해 어떠한 인식의 변화가 대두했는지, 나아가 이러한 변화상이 회화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여기서는 먼저 논문의 내용을 살펴본 후, 관련한 견해를 덧붙이도록 하겠다."
각자가 써 온 서평 출력물을 서로 교차하고 비교해서 읽었다. 지도교수님은 우리들에게 "김미정 씨의 글처럼 써 오면 됩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미정언니의 서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 논문은 다양한 문화가 혼재했던 격동의 금강산이라는 공간에 주목해 20세기 전반기의 금강산과 금강산 그림을 살펴본 글이다. 저자는 근대기 금강산 관광이 대중화되어 가는 면모를 살피며, 여러 주체마다 다양하게 수용했던 금강산에 대한 인식과 금강산 그림의 변화 양상을 검토했다. 이에 필자는 근대기 혼성문화공간으로서의 금강산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며, 이 논문의 연구 의의를 살펴보려고 한다."
언니의 글을 읽다가, 내 글의 문제점을 찾게 되었다. '논문 서평' 대신에 '칼럼'을 써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 지도교수가 부여한 과제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평 쓰기 과제는 자신의 논문 초록이나 결론 부분을 쓰는 연습이기도 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정해진 형식이 있었고, 미정 언니의 글은 그러한 기본을 잘 지키고 있었다. 언니의 글을 읽으며 메모를 했다.
서론에서 첫 문장은 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담아내야 하는구나, 그다음으로 앞으로 전개할 글의 구성을 설명하고, '~을 이해하기 위해 ~ 연구를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좋았다. 논문 서평은 철저히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글이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론에서는 논문 속의 소단원들을 비슷한 비중의 단락으로 구성하여 정리하는 것이 좋았다. 각 단락마다는 핵심 내용을 요약한 문장을 두괄식으로 배치해 두면 읽는 이가 핵심 내용을 파악하기 좋았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저자의 의도를 언급하다가 자연스럽게 '다만' 또는 '그러나'로 시작하는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고, 마지막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의를 언급하며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 마지막 문 닫고 나올 때는 그래도 훈훈한 인사로 끝내는 게 좋았다.
해당 논문의 한계를 포착하는 시선은 서평 작성자의 역량을 가장 크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훗날 박사 과정을 마친 이후,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심사할 기회가 주어질 때, 심사평 작성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이기도 했다.
대학원에서는 내 연구 주제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일 못지않게, 다른 이의 연구에 대해 비평하고 조언을 주는 역량 또한 중요한 연구 역량이기도 했다. 미정언니는 그런 연구 역량에서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 내용뿐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태도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논문도 미정언니의 애정 어린 첨삭 코멘트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