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i Feb 23. 2024

나는 왜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겠다고 이 고생을

지도 교수님의 수업은 매 학기 목요일 오후 시간표에 개설되곤 했다. 그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밤을 꼬박 지새우게 될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대학원 수업에는 논문 서평 쓰기, 전시 감상문 쓰기, 외국 논문 번역, 주제 조사 등이 과제로 쏟아졌다. 그 와중에 수업 일정과는 별개로 본인 스스로 논문을 만들어가며, 기말 발표에서 이전 학기보다 진전된 결과물을 선보여야 했다. 목요일 낮의 전공 수업 전까지 과제를 붙들고 있다가, 그날 아침과 점심은 건너뛰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목요일 전공 수업이 끝나고 나면 대학원 동료들과 학교 앞 분식집으로 몰려갔다. 그간의 긴장은 내려놓고, 떡볶이와 튀김으로 그제야 첫끼 식사를 하곤 했다.


분식집의 테이블에서 순대에 소금을 찍어 먹으며, 우리는 함께 논문 진도가 나가지 않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이어지던 떡볶이집 회동은 '나 따위가 무슨 논문이야'하는 자괴감의 소용돌이에 빠진 대학원생들을 구원해 주는 숨구멍이 되었다. 혼돈의 목요일이 지나면, 그다음 날 오전까지 밀린 잠을 몰아서 잤다. 빨래도 돌리고 물걸레 청소기도 돌리고, 페북 세계에서 핫해서 구매해 둔 단행본도 읽었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가 되면 벌써 마음이 초조해져서 다시 노트북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읽어야 할 논문도 많고, 찾아 놓은 자료도 분석해야 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한 달마다 온라인 줌으로 논문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약속이 잡힌 다음 달까지 어느 정도 논문 진도가 나가 있어야 했다.


식구들이 잠든 새벽, 고양이가 옆에서 가르릉 거리며 코를 골고 있는 거실 식탁에 앉아 있다 보면, 문득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르곤 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고, 대학생 때는 임용고시 합격을 위해 공부했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 난 다음에는 내일 있을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왜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박물관 학예사로 나가려는 대학원 동료들과는 달리, 나는 다시 직장인 학교로 돌아갈 수 있으니, 논문이나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이 부분은 감사한 상황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절실한 조건 때문에 가볍게 공부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논문이 필요해서', '학위가 필요해서'도 아니었지만, '가볍게 공부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유명 관광지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에 머무를 수 있으니 둘러봐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지만, 관광객으로 온 사람은 숙박의 기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직장에 3년 무급 휴직을 신청한 상태였고, 기간이 지나면 복귀해야 했다. 직장인인 내가 하루를 온전히 내 의지에 따라 스케줄을 짜서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받은 시간은 이때뿐이니, 하루하루의 대학원 생활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성취해야겠다는 목적을 갖지 않아서 과정이 즐거웠다. 자료를 수집하러 국사편찬위원회를 방문하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방문하고, 해외의 사이트를 뒤적이는 일 때마다 설렜다. 그렇게 낱개로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긁어모았다가, 그것들이 어떠한 그림의 한 조각으로 자리 배치되면서 큰 형상이 나타날 때의 짜릿함이 있었다. 비록 그 결론은 논문 속에 건조한 한 단락으로 들어가게 될지언정, 행간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날 것은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를 즐겁게 만들 테였다. 되돌아보면, 그 순간마다 '나는 공부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시간을 '공부'라는 납작한 단어로 규정짓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전 27화 잡지를 돌려달라는 문장 뒤의 숨은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