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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Feb 14. 2024

잡지를 돌려달라는 문장 뒤의 숨은 의미

“부탁 한 가지는 일전에 보내드린 1956년 2월 『인민조선』 잡지 2호를 도로 곧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잡지사에서 급히 회수해 보내라는 지시가 있어서, 미안하지만 비행기에 부쳐서 곧 도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새로 2호가 나오면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북한 화가 정관철이 소련 화가 변월룡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였다. 정관철은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당시 북한 미술계 최고의 권력자였다. 변월룡은 고려인 출신으로, 소련 레핀미술대학 교수 자리까지 올라갔던 인물이었다. 정관철과 변월룡은 어떻게 아는 사이였을까.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사회 여러 분야를 재건해야 했고, 이때 소련에서는 레핀미술대학 교수 변월룡을 북한에 파견해 북한 미술의 기반을 다지도록 했다. 그렇게 북한에 파견된 변월룡은 1년여 정도를 머물며 북한 화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그리고 소련에 돌아가서도 5년여 넘게 북한 화가들과 편지를 교환하며 친분을 이어갔다.


  이 편지는 1990년대 러시아 유학생 문영대 선생님에 의해, 변월룡의 집에서 최초로 국내에서 소개가 되었다. 그렇게 발굴된 1950년대 북한 화가들의 편지는 이 시기 북한미술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되었다. 변월룡이 받은 편지는 다양한 연구자들에 의해 분석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정관철이 이미 소련의 변월룡에게 보냈던 『인민조선』 을 왜 다시 돌려달라고 썼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잡지에 어떤 내용이 있었길래, 이미 보낸 잡지를 돌려 달라고 했을까. 더구나 ' 1956년 2월 『인민조선』 잡지 2호'라는 구절에 밑줄까지 강조하다니. 혹시 이 잡지에 어떠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1956년 『인민조선』 2월호를 살펴봐야 했지만, 국내에는 이 잡지를 소장한 기관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대학원 선배 홍성후 선생님이 미국 의회도서관에 『인민조선』 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홍선생님은 이 기관에 꼭 들러봐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방문했던 당시, 의회도서관도 함께 방문했다. 도서관 데스크에서 『인민조선』해당호를 신청해서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스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잊고 있다가, 몇 달이 흘러 흐루쇼프의 <개인숭배와 그 결과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흐루쇼프가 제20차 전당대회에서 발표한 연설문이 실려 있는 책이었다.


"스탈린 사망 이후 당 중앙위원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특정 개인에 대한 과대평가를, 즉 특정 개인을 신처럼 초자연적 성질을 지닌 초인간적 존재로 만들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하는 노선을 엄격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개인에 대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탈린에 대한 그러한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조장돼 왔습니다."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쇼프는 그간 소련에서 자행되어 왔던 스탈린 숭배 현상에 대해 비판했다. 이 연설이 소련 사회 전반은 물론 소련 미술계에 미친 파장은 컸다. 더 이상 스탈린의 초상화나 동상은 제작되지 않았고, 그 자리를 레닌의 형상으로 대체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어가다가, 혹시 1956년 『인민 조선』 2월호도 이와 관련한 접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흐루쇼프의 연설이 1956년 2월이었는데, 정관철이 변월룡에게 돌려달라고 한 잡지가 발행된 시점도 공교롭게 똑같았다.


 다시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스캔해 온 『인민조선』 pdf 본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성화가 그린 <김일성 원수> 초상화였다. 김일성 집무실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에는 김일성 뒤로 스탈린 초상 액자가 보였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1956년 2월, 소련에서는 스탈린 숭배 풍조를 문제 삼는 발언들이 쏟아졌는데, 북한의 최고 통치자는 여전히 자신의 집무실에 스탈린 초상을 걸어놓고 있더라는 사실을 잡지에 박제시켜 놓은 셈이었다.

 흐루쇼프의 연설 내용을 들은 북한 정권은 이제 스탈린을 공식적으로 추앙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똥은 이리저리 튀어, 스탈린 얼굴이 들어간 그림을 넣어 발행한 출판사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미술가 동맹 위원장 정관철이 변월룡에게 그 잡지를 돌려달라고 편지를 썼던 것이다.


 미술 작품은 화가 개인의 성장 배경이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거기에 당시 미술계의 사조와 시대적 배경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북한 미술의 경우, 당의 정책에 의해 주제와 화풍까지 정해졌던 만큼, 화가 개인보다는 당시 북한 상황에 대한 시대사적 이해가 중요하다. 북한 내부 정세의 변화, 그리고 1950년대 북한이 지향점으로 삼았던 소련과의 정치 관계는 이들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북한에서 예술은 정치와 경제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작품 분석에서 시대적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은 미술사 학부 출신이 아닌 내게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었다.


 정관철이 소련의 변월룡에게 1956년 『인민 조선』 2월호를 돌려달라고 했던 한 줄 안에는, 1956년 2월 흐루쇼프의 연설 이후 바뀌게 된 소련의 권력관계 변화가 숨겨져 있었다. 이 퍼즐이 맞춰졌을 때의 그 짜릿함은 내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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