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모레비 Feb 20. 2020

인간관계의 기본기 : 2心

좋은 관계를 만드는 두 가지 핵심요소




혹시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는 거 아냐?



 심리학을 전공으로 택한 후 어느 자리에서건 전공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이 질문이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심리학과가 독심술사를 양성하는 곳인 것 마냥 농담을 건네곤 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이유를 연구하는 개성있는(?) 전공을 가진 덕분에 나는 기업에서 인사(HR) 담당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사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업무 특성상 직원 면담, 오리엔테이션, 채용 설명회, 교육 등을 통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많은 기회는 자연스레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줬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인간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은 후배들과 함께 일하며 시작됐다. 업무를 하기 위해 모인 조직이라도 우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서로의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고, 함께 일하기 좋으니 말이다. 넓은 인간관계는 운이 좋게도 제 발로 찾아왔지만 리더가 된 후 후배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전공을 소개하며 수없이 들었던 심리학과 출신은 독심술사라는 독특한 설정이 현실이었으면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강의장에서 배운 수많은 대화 스킬들을 하나씩 익히고 써본들 깊은 관계를 만드는데 드라마틱한 도움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 시도 끝에 내가 힌트를 얻은 지점은 인간관계의 특수성이었다. 돌이켜보면 인간관계와 이를 둘러싼 상황은 대개 가변적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같은 경우에도 매번 서로의 위치와 상황이 변한다. 어제의 좋은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가변성 앞에서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드는 타율 높은 기술은 바로 꾸준한 관심과 진심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독심술사로 간혹 오해를 받던 내게도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투심력(?)과 같은 요행이 아닌 꾸준한 두 가지 마음의 근력이 먼저 필요했던 것이다.






첫 번째 心. 관심

영혼 없는 질문은 손에 꼭 쥐고만 계세요.


 아내와의 연애시절 대화에 참 미숙했다. 3살 연상이었던 나는 졸업 후 먼저 취업을 했고, 서울을 벗어나 지역 영업관리본부로 발령 받았다. 캠퍼스 커플이었던지라 매일같이 데이트를 하던 우리에게 주말 데이트는 낯설기만 했다. 단 하루 허락됐던 짧은 데이트 시간은 내게 불필요하게 큰 책임감을 안겨줬다. 매일 만나던 그 감정만큼 행복하고 즐거워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데이트 도중 찾아오는 침묵이 왜 그토록 나를 불안하게 했는지 모른다.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조금 마음이 멀어졌나?'라는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초조해했으며, 조금은 어색해진 것 같은 마음에 좌불안석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화 속의 침묵을 즐길 정도로 마음이 여유롭지 않았고, 매일 같던 만남이 뜨문 뜨문한 만남으로 바뀌면서 온전히 상대방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꺼내 든 회심의 카드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하면 어찌 됐든 상대방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으니 나름 침묵의 순간을 이겨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한다고 해서 뚝뚝 끊기던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질 리 없었다. 연이어 던지던 나의 맹목적 질문은 타율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단답형이었고, 긴 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반복되는 짧은 대답에 '대화할 의지가 없나?'라는 오해로 풀이 죽어 대화를 멈춰버리기도 했다.


  며칠 전 예능 프로그램 [편애 중계] 모태솔로 편을 보다가 몇 년 전 나의 모습을 마주했다. TV 속에는 모태솔로남들이 여성분과 소개팅하는 장면이 중계됐는데, 대부분의 모솔남들은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허둥지둥했다.


 특히나 한 모솔남은 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대범함을 보여 MC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맥락 없는 질문과 기계적 리액션을 반복해 MC들의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냈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갔다.


모솔남 : “영화 좋아하세요?”
소개팅녀 : “최근에 겨울왕국 2 재밌게 봤어요!”

모솔남 : “아~은혜씨는 어떤 분을 좋아하세요?”

소개팅녀 : “저는 유머감각있는 사람 좋아해요.”

모솔남 : “아~그럼 운동하는 건 좋아하세요?”

소개팅녀 : “네..”


 모솔남의 의도대로 어색함을 상징하는 침묵은 질문을 통해 사라졌다. 하지만 건너편에 앉아있는 여자분은 백문백답과 같은 상황에 정신없어했고, 대화를 주도하던 모솔남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던 두 MC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 안타깝네요. 조금 적막을 즐겨도 되는데요~"
"여기서 100개 이야기하는 것보다 하나만 이야기하는 게 공감하고 소통하기 좋거든요."


 상대방의 대답을 이끌어내고, 서로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생각은 옳다. 하지만 영혼 없는 질문은 때때로 도구가 아닌 흉기가 될 수 있다.


 진짜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직장에서 사용하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후배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여는 질문이 있는 반면 상대방을 난처하게 하거나 영혼이 단 한 스푼도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질문이 수없이 많다.


 특히 날씨나 주말 안부를 묻는 형식적인 질문을 대화의 시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화를 여는 훌륭한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담겨있다. 영혼 없이 매주 같은 질문을 던지기 전에 후배가 겪고 있는 중요한 이벤트, 그가 업무적으로 고민이 있을만한 지점에 도움을 줄만한 일들을 먼저 떠올려 보자.






두 번째 心. 진심

관계를 만드는 한 땀 한 땀 노력의 진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매년 상하반기 한 번씩 신입사원 교육의 담당 지도 선배로 2~3주간 합숙 교육을 함께한다. 지도 선배의 역할은 담임 선생님과 같다. 낯선 장소에서 합숙하는 생활방식부터 교육 참여 방법까지 모든 사항을 세세하게 안내해주고, 불편함이 없도록 이끌며 후배들 앞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교육 초반부에는 20~30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처음 보는 회사 선배 그리고 환경에 대한 낯섦 덕에 곧잘 말을 따른다. 이처럼 긴장감이 조성된 상태에서는 이끄는 힘이 중요하지만, 장기간 교육의 특성상 후반부에는 그들이 스스로 따르게 하지 않으면 혼자서 여러 명을 효과적으로 리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회사에는 신입사원 교육을 여러 해 담당해온 선배 한분이 계셨다. 함께 일하며 그분의 훌륭한 점들을 어깨너머로 배워왔지만 가장 감동했던 부분은 능수능란한 스피치 스킬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노하우도 아니었다. 그분에게 가장 크게 배운건 교육생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진심이 담긴 진짜 노력이었다.


 선배는 교육생들을 만날 때 한 명 한 명 정확하게 이름을 불러주었고, 저마다의 특징과 출신 지역에 맞춰 맞춤형 질문을 던졌다. 후배들의 인사에 "네~좋은 아침이요."라고 기계적으로 인사를 받곤 하던 내가 가장 많이 반성한 순간이었다.


 그 후 장기간의 교육이 끝나고, 한 팀을 담당한 선배로서 신입사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소감을 나누다 "한분 한분 다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라는 말에 유독 장난기 가득했던 한 친구가 돌발 요청을 했다.


 "선배님! 그럼 저희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세요!"


 순식간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고, 나는 핑계를 대기보다 그동안 노력하며 기억해뒀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기 시작했다. 아찔한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25명이 넘는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었을 때 교육 기간 중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관계는 진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순간들을 떠올려보자. 어떻게든 그가 좋아하는 것, 그가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 데이트 코스를 정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만남의 순간을 기다린다. 관계에는 지름길이 없다. 결국 먼저 관심을 갖고 그 사람에 관한 사실을 기억하며, 이를 표현할 때 상대방도 감동하기 마련이다.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

관심과 진심이 주는 선물 : 진짜 나를 찾기


 커뮤니케이션 모델인 조하리의 창은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가져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알려준다. 바로 상대방에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진심과 깊이 있는 관심이 담긴 대화가 자신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조셉 러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햄(Harry Ingham)이라는 두 심리학자의 논문에서 소개된 이 모델은 자기 공개, 상호 피드백이 핵심이다.


조하리의 창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조하리의 창은 나를 기준으로 한다. 내가 나에 대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 상대방이 나에 대해 알거나 모르는 부분을 기준으로 4가지 창문을 제시한다. 이 모델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솔직한 인간관계와 대화를 통해 4개의 창을 활짝 여는 것이다.


 4가지 창을 모두 활짝 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첫째. 먼저 타인이 모르는 자신의 영역을 솔직히 오픈하는 진심을 통해 숨겨진 창을 열어야 한다.

둘째.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솔직한 대화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창을 열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한다.

셋째. 관심과 진심을 기반으로 신뢰를 쌓고, 더욱 많은 대화로 서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창을 열어간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에는 왕도가 없다.


"아무리 바빠도 장미꽃 향기를 맡을 시간을 따로 내라. 그 장미는 바로 당신 직원들이다."
- 빌 캠벨


먼저 가까워지고자 하는 진심, 그리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관심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 깊이 연결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덤으로 찾아오는 반가운 선물이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독, 좋아요,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



이전 09화 리더의 ‘필패 신드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