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결국 혼자가 아니기를 선택했습니다

by 연쇄상담마

지지고 볶고, 또다시 지졌다.

우리의 연애는 평범한 듯 다르게, 또다시 평범하게 흘러갔다.

남들처럼 싸우고 어색하게 화해하고, 잊고 사랑하고 또 싸워가며 서로에게 세월의 흔적을 하나둘 묻혀갔다.


그러다 취직을 했다.

나도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이 된 느낌은 덤덤했고, 이제는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내게 노크했다.


훗날 주례선생님이 되신 교수님 비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OO아.”

“네, 교수님.”

“너 결혼할 거니?”

“네, 교수님! 해야죠!”

“그래? 그럼 최대한 빨리 해라.”

“왜요, 교수님?”

“어릴 때 해야 고생이 고생인지도 모르고 지나가.”


한 번도 공부, 커리어, 삶의 조언은 하지 않던 교수님은

그날따라 그 한마디를 하셨다.

지나가듯 던진 그 말씀이, 머릿속 전구처럼 다시 켜졌다.


그렇게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주말에 뭐 하셔?”

“응? 몰라.”

“서울 한번 오시라고 해. 오랜만에 인사도 드리자.”

“그래? 한번 여쭤볼게.”


알겠다는 답이 왔다.

장소는 인사동이었다.

오랜만에 무릎에 닿을 듯 인사를 드렸다.


“잘 지내셨죠?”

“응~ 그래, 잘 지냈나?”

“네네, 잘 지냈습니다.”

“취직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메뉴는 한식이었다.

오랜만의 인사 자리답게, 격식 있는 메뉴와 반찬이 끝없이 이어졌다.

직장을 구한 나의 자세와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잃을 게 없던 청년은 어느새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외국인들만 기웃거리는 기념품 가게는 그대로였다.

‘점집’이라 써붙인 간이천막 안엔, 두 손을 꼭 잡은 커플이 토끼눈을 하고 앉아 있었다.

변함없는 풍경 속에서, 나 혼자 다른 인사동을 걷고 있었다.


아버님은 맥주 한잔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인사동 거리 초입 2층 맥주집으로 올라앉았다.

뻥튀기와 복붙 한 메뉴판은 여전했고,

한 잔 두 잔 기분 좋게 들이키며 술자리가 이어졌다.


“직장은 어떤가?”

“네! 아직 정신없지만 빠르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기습 질문에 모범답안 같은 말을 쏟아내며,

면접으로 단련된 건실함과 어른스러움을 한껏 내세웠다.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남은 맥주를 벌컥 비워내며 한마디를 던졌다.


“아버님, 어머님. 저 이제 취직도 했으니…”

“응, 그래.”

“OO이랑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습니다.”


뜬금없는 타이밍, 상의 없는 한마디였다.

대전집에서 처음 봤던 부모님의 표정이 잠시 스쳐갔다.


짧은 정적.

아버님은 맥주 두 잔을 더 주문하셨고,

어머님은 여자친구를 바라봤다.


수초 사이, 모든 술이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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