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영역

씨남이

by 연쇄상담마

99년도 수능은

난데없는 언어영역의 심술로 이변이 속출했다.

예상치 못한 영역의 점수 폭락으로

입시 계획을 수정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등장했다.


반전의 반전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90도로 세워진 교과서 겉표지 속

무협지 시리즈에 심취했던 한 친구는

다져진 속독 실력으로 뜻하지 않던 언어영역 신분상승을 이뤄냈다.


무협지 대신 교과서,

철저한 문제풀이 위주 훈련에 익숙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늦가을 수북이 쌓여버린 낙엽처럼 떨어지는 점수를 잡을 길이 없었다.


씨남이도 언어영역을 망쳤다고 했다.

서울대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했던 씨남이의 계획도 수정이 필요했고 씨남이의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재수를 외쳤다.


“씨남아, 재수해?”

“응, 고민 좀 해봐야지“

”1학기만 다니고 반수를 하던지“

”이것저것 상황도 봐야 하고, 암튼 고민해 볼게“

그즈음, 씨남이 주변엔 늘 이런 대화로 가득했다.


있지도 않은 실력으론 성립하지도 않을 고민이었지만

씨남이의 실력 발휘엔 현실이라고 불리는 차가운 벽이 서있었다.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씨남이는 재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수긍, 타협, 인정, 굴복.

뒤죽박죽, 질서 없는 모양새의 단어들로 채워진 현실의 벽은 겨우 다음 풍경만 비칠 정도의 높이였다.


씨남이는 그 벽을 뛰어넘는 대신 벽을 따라 걸어보길 택했다.


99년 언어영역은 유래 없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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