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남이
속도가 붙은 시간이었다.
각종 학사일정은 쉴 틈 없이 몰아치고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우리는 빈틈없이 과정을 수료해 나갔다.
먼 미래처럼 보이던 11월 수능을 지나
어느덧 우린 청소년 시절의 마지막 선을 넘고 있었다.
결승선 뒤로 보이는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은
19살 모습에 머물 것 같았다.
대부분의 인연이 그렇듯,
그 시절에 멈춘 모습으로 기억될 얼굴들이었다.
졸업식.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고급스러움과 촌스러움의 중간쯤 되는
버건디색 표지의 졸업앨범을 꺼내 들었다.
웬만한 머그샷쯤 우습게 만들 증명사진들이 즐비했다.
수학여행 단체사진은 나를 단숨에 그때로 데려갔다.
아무리 막아도 틈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졸업앨범 맨 뒷장은 졸업생들의 주소와 집전화번호로 빼곡했다.
‘아, 얘가 여기 살았구나’
‘어? 나랑 같은 아파트네’
그러다 어떤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XXX-XXXX’
앨범 속 번호와 전화기를 번갈아 확인한 뒤
신중하게 눌린 번호는 곧 신호음을 내보냈다.
‘따르릉, 따르릉ㅡ’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씨남이(물론 본명을 말했다) 집이죠?“
”아 네 그런데 누구세요?“
”안녕하세요~전 씨남이 고3 같은 반 친구 OOO입니다“
”아 그래요?“
”네, 혹시 씨남이 집에 있을까요?“
”잠시만요“
”야! 나야. 반장“
”응? 너가 무슨 일이야“
”그냥 앨범 보다가 전화해 봤지, 흐흐“
”그래? 너가 전화해서 놀라긴 했다“
”언제 한번 얼굴이나 보자“
”그래, 그러지뭐“
그냥, 계획도 없이
졸업앨범 속에서 19살 씨남이를 다시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