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씨남이

by 연쇄상담마

씨남이도 몇 번의 연애를 했다.

그의 서툴고 귀여운 연애 이야기는

늘 우리의 시간을 훔쳐갔다.


#1. 양평 드라이브

여자친구를 태워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간 씨남이는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알콩달콩 둘의 미래를 그렸다고 한다.

어두워진 양평 국도를 돌아오는 길,

상향등 켜는 방법을 모르던 씨남이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상향등 스위치를 당긴 채 서울까지 달렸다.

긴장을 놓지 않듯,

당겨진 손가락은 두 시간을 버텨냈고

우리는 그것을 사랑의 힘이라 불렀다.


#2. 첫 주유

씨남이가 첫 주유를 하는 날이었다.

부드러운 핸들링으로 주유소 입구를 통과했다.

빈 주유기를 확인하고 차를 멈춰 세운 씨남이는

자연스럽게 시동을 껐다.


주유소 직원이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

주유구를 열어본 적 없는 씨남이는

스위치들을 더듬었다.

그러다 본네트를 열었다.

당황한 기색을 비추지 않으려 애썼다.


순간, 주유기 모양 스위치가 눈에 띄었다.

‘딸깍’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주유구가 열렸다.

‘똑똑’

주유소 직원이 다시 창문을 두드렸다.

“얼마 주유할까요?”

닫힌 창 너머로 희미한 음성이 들렸다.

“오빠, 얼마 주유하냐고 물어보셔..”

“어어, 잠깐”

다시 한번 당황한 기색을 비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꾹꾹ㅡ‘

창문이 내려갈 리 없었다. 차는 시동이 꺼져 있었다.

손가락을 써볼까, 목소리를 높여볼까.

씨남이의 선택은 차문이었다.

’털컥ㅡ’

열린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씨남이는 말했다.

“3만원이요”


#3. 폭우

비가 많이 오던 날,

우리 커플은 씨남이 커플과 함께 천안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이동하는 씨남이 차를 뒤따랐다.


쏟아지는 장대비,

곧 떨어져 나갈 듯 흔들리는 와이퍼 건너

씨남이 차의 비상깜빡이가 부지런히 번쩍였다.

급히 방향을 틀어 비상주차를 한 씨남이를 따라 차를 세웠다.


작은 우산 아래,

멎지 않는 비를 뚫고 씨남이 차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왜 멈춰?“

씨남이는 말 대신 창문을 가리켰다.

오래된 와이퍼는 제각각의 박자로 마지막 남은 사력을 다하고 서로에게 기대듯 엉켜버렸다.

와이퍼가 만든 대문자 X. 처음 보는 광경에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어떻게든 그 지역을 벗어나야 했다.


느려진 속도로 조금씩 움직였다.

생명을 다한 와이퍼 한쪽을 뜯어 손에 쥔 씨남이는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왼팔을 뻗어 빗물을 훑어냈다.

그렇게 씨남이는 차를 팔았다.


각자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등장인물이기도, 관객이기도 했다.


매번 같은 웃음을 짓는 20년 안주거리.

씨남이의 그 어설픈 순간 속에

우리의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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