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 식구와 여행을다녀왔다. 성인 6명에 유아 2명. 8명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사람이 많은 만큼 신경 쓸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여행지를 고르는 것부터 스케줄을 맞추는 것, 티켓팅을 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짐을 싸는 것까지. 결혼 전에 아내와 다니던 여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난이도가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는 삼대가 함께 떠나는 여행을 말이다. 우선 장점이 아주 많다. 첫 번째,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주로 많은 시간을 부모와만 보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낯을 가리는 경우도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나 이모, 고모 등. 가까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다르다. 본인들을 예뻐해 주는 것을 알기도 하고, 예뻐해 주는 만큼 정말 재미있게 놀아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모습들과 비슷한 가족들이 더 익숙해서 그런지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또래의 사촌들까지 있다면 모든 시간이 다이내믹해진다. 함께 어울리고 장난치고 함께 어울리다 보면 시간은 후두둑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보통 아이들이 주말에 친척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좀 적응을 하고, 재미있어질 때쯤 되면 헤어지게 되기마련인데, 여행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하루 종일 즐거울 수 있다는것이다.
두 번째, 부모님들께서 좋아하신다. 여행 내내 아이들을 함께 봐주시고, 안아주시는 것은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들도 함께 여행 와서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주말에 잠깐잠깐씩 보던 손주들과 아침에 눈뜰 때부터 함께하고, 하루 종일 함께 놀면서 아이들의 재롱도 계속 보다 보니 부모님들께서도 하루 종일 웃음이 얼굴에서 가시지 않는다. 비록 먼 여행에 아이들까지 봐주시느라 힘이 드시기도 하겠지만, 그 시간에 부모님들만 집에 계시는 것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더 좋은 일이다.
세 번째, 우리가 너무 좋다. 기본적으로 아이만 데리고 떠나는 여행은 아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챙겨 온 어마어마한 짐과 매 순간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신경은 우리에게 절대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있는 부모님들의 존재는 우리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 준다. 부모님들께서는 수시로 아이들을 봐주시면서 즐거워하시고, 그사이에 우리는 정리를 하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잠시 쉬기도 한다. 특히, 좋은 여행지에서 누리는 엄청난 풍경과 맛있는 음식들을 부모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다. 아이가 생기면서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점점 커지는데, 그에 대한 자기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끔 부모님들은 부부만의 시간을 주기도 하신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등 떠밀기도 하시는데, 길지 않은 시간, 잠시 맥주라도 한잔하고 오면, 그 시간이 그렇게 달달할 수가 없다.
"애들하고 여행 왔어! 뭐 손주들 봐주러 왔지 뭐"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아버지가 친구분과 통화하신 내용이다. 아버지는 무심하게 툭 이야기하신 거지만, 저 말씀을 하시면서도 아버지는 웃고 계셨고, 끊자마자 손주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계셨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여행을 위해 부모님들을 이용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만 떠나는 여행이 부담스러워 효도를 핑계로 부모님을 아이들의 케어하는 역할로 모시고 간 거 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두에게 행복한 여행이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을 예뻐해 주는 많은 사람들과 하루 종일 신기한 세상을 경험해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게 된 것이고, 부모님들은 딸들과 사위들 손주들까지 모두 거느리고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추억을 쌓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좋은 것을 보여드리고 맛있는 것을 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바로 아이들이 잠든 이후의 시간들이었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다 재운 이후에 어른들은 거실에 모여 맥주를 꼭 한 잔씩 하곤 했다. 우리는 그래도 과수원에 일을 도와드리러 자주 가는 편이기 때문에 함께 저녁을 먹거나 중간에 반주를 하기도 했지만, 각자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모두 함께 술을 마실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아이들만 잠들면 모두가 맥주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날의 추억을 더듬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시간들이 이 여행에서는 가장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크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부모님들의 시간들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추억들이 너무나도 짧고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부모님과 떠나는 여행은 뭐든지 옳다. 그게 어떤 핑계가 있던, 어떤 목적이 있던, 어떤 꼼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순간순간이 모두의 기억 속에 소중하게 담길 것이고,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