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왜 항상 미안해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거짓말쟁이

by 박희종

얼마 전에 아이 목욕을 시키다가 아이가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세면대에 아이의 이마가 쿵했다. 여간해서는 잘 울지 않는 아이가 꽤 아팠는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가 출동해서 안아주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고, 나는 그동안 옆에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미안해. 많이 아프지?, 아빠가 다음에는 더 잘 잡아줄게"

아이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고작 9개월의 삶을 살아오면서, 소파에서 몇 번 떨어지기도 하고,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문이나 가구에 쿵을 한 것은 정말 셀 수도 없다.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자꾸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게 된다. 아직은 모든 것이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나에게 항상 미안하셨다고 했다. 그 당시에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강남에서 여유 있게 살고 있던 사촌들에 비해 항상 부족해 보이던 나에게, 항상 더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고, 내가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자주 말씀을 하신다.

"내가 과외도 시켜주고, 학원도 더 보내주고, 유학까지 다 보내주고 싶었는데, 그걸 못해준 게 항상 미안하다. 엄마가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뒷바라지를 잘 못해줬어. 미안해"

하지만 나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나는 과외는 못 받아도 필요한 학원은 다니면서 공부했고, 유학이나 어학연수는 못 다녀왔어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생길 때마다 마음껏 여행을 다녔다. (비록 여행비용은 주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하곤 했지만, 여행을 떠날때마나 매번 용돈을 챙겨주셨다.) 매번은 아이어도 가끔은 메이커 옷을 사주셨고, 신발도 비싼 건 아니어도 좋은 걸 사주시곤 했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셨고, 나는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는 않게 자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계속 미안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제 아이를 낳고 함께 생활하다 보니 그 마음이 뭔지 조금씩 느끼게 된다. 요즘 아이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미안함이 된다. 잠을 못 자서 투정대는 것도, 이유식을 잘 먹지 않고 남기는 것도, 물려받은 옷을 입히는 것도, 아이가 당근 마켓에서 사 온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도, 온통 미안한 일뿐이다. 물론,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어차피 기억도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우리의 탓이 아니라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그래도 마음으로는 항상 미안하다.

나는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참 많다. 사주고 싶은 것도 많고, 보여주고 싶은 곳도 많고, 먹이고 싶은 것도 많다. 심지어 아이와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도 항상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고, 항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자꾸 아이에게 미안하다. 마치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하셨던 말씀처럼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는 어머니 끓여주신 라면을 먹다가 뜨거운 냄비에 종아리를 데인적이 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크게 놀라셔서 소주를 바르고,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셨다. 그리고 매일 밤 화상연고도 발라주셨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스럽게 돌봐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종아리에는 작은 흉터가 남았고, 어머니는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미안해하시고 가슴 아파하셨다. (2차 성징으로 다리털이 나면서 흉터가 가려지자 그때서야 잊은 듯하셨다.)

다행히도 우리 아기가 세면대에 쿵한 곳은 조금 붓기는 했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하지만 무엇인가 상처가 되고, 혹이 생겼다면 나는 볼 때마다 미안했을 것이다. 부모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자신들의 아이를 돌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은 항상 생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부모에게는 스스로를 탓하게 하는 후회가 된다.

그래서 점점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 지는 것 같다. 나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졌을 때, 나보다 더 아파하시고 미안해하실 어머니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어머니에게 거짓말쟁이가 된다.


"회사에서 항상 인정받고 있어요."


"아무 걱정 마세요. 아무 일 없어요."


"아픈데 없어요. 건강해요."


어머니가 더 이상 미안해하시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항상 괜찮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가야 한다. 그게 비록 살짝 과장되고, 거짓말이 섞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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