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기 전에 달여행을 할 수 있을까?
아직 꿈을 꾼다는 것이 철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한지 벌써 12년이 지나고 있다. 회사에서는 어느새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고, 남아있는 선배보다 후배들이 많다. 가정에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고,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더 커졌다. 이제 나는 "도전"이나 "꿈"이라는 단어보다는 "안정"이나 "포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기 시작했다.
부정적으로 들렸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의 삶이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스스로가 매우 대견하며, 회사 내에서의 평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내 몫의 일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업무적인 성취감도 있고, 가장으로서의 보람도 느끼고 있다. 태어난 아이에게 넉넉하지는 않아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고, 아이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의 내 삶에 내가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스스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온갖 망상을 하며, 샤워를 하고, 운전을 한다. 미래에 훨씬 성공해있을 나의 모습을 기대하고, 그로 인해 내가 베풀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남들에게 말도 못 할 만큼 허무맹랑한 상상들이고, 말도 안 되는 공상이지만 나는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다.
상상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은 만들어 낸다. 지금 현실의 엄청난 기술들은 과거에 수많은 공상가들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당시에는 말도 안 되던 것들이 현재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니 그 어떤 상상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우리가 죽기 전에 달여행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돈을 엄청 벌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나는 그냥 상상해본 적이 있다. 일론 머스크가 사기업의 우주비행을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 머지않아 일반인들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리라 믿었고, 지금의 의료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100년 이상을 산다고 본다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상은 돈이 들지 않는다. 물론, 허무맹랑한 상상 속에만 갇혀 산다면, 삶이 무너질 수는 있겠지만, 미래를 위한 희망적인 상상들은 삶의 자극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교육 중에 교육생들의 성향분석을 하다 보면, 이성적인 사고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일수록 나의 책임이나 역할에 집중하여 사고하고, 나의 본능이나 촉을 무시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차분하고 냉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당연히 그들의 삶을 비난할 수도 없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것이고, 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들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들을 그들은 그 성향으로 인해 삶의 재미를 놓치는 경우들이 많고, 스스로 더 높은 가능성들을 포기하고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느낄 때, 현실은 굉장히 냉정하고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명확하기 때문에 무리해서 도전을 한다거나, 진취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성향분석에서 자신의 본능이나 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이 우선시 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사고능력을 조금 덜어질지 모르지만 삶의 만족도가 높고, 긍정적이며, 추진력이 높은 편이다. 물론, 그런 성향들이 체계적이지 않은 과정으로 인해 사기를 당하거나 실패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들은 결코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특징이 더 큰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같다고 하더라도, 걱정이 앞서는 사람은 리스크를 줄일 수는 있지만, 모든 과정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하지만 상상과 기대가 큰 사람들은 과정에서부터 많은 기쁨을 느낀다. 즉, 결과를 따지면 이성적인 사람들이 더 안정적이고 좋은 성과를 만들고 있지만, 그 과정의 행복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더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당연히 제일 좋은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장점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원래 아주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본능에 충실하고, 촉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나의 20대는 아주 파란만장했고, 행복했다. 내가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나의 저 특성들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조직에서 1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개성들도 조직에 맞게 깎여지고 연마되었으며, 무뎌지고 흐릿해졌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직장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는 것이다.
직장인으로서의 성공, 허무맹랑한 작가로서의 성공, 가끔 로또의 당첨을 꿈꾸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들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하고 기분 좋게 하며, 나를 더욱 움직이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상상하며,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본다. 한 번도 내 상상대로 미래가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항상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세상들이 펼쳐지곤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의 인생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나는 아직 내 삶에 베팅이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꿈을 꾸고 새로운 삶을 상상하며, 점점 더 나아질 나를 기대한다. 그리고 기대와 희망, 상상과 꿈들이 나를 더 움직이게 만들고, 나를 더 노력하게 만든다. 상상은 돈이 들지 않는다. 아직 꿈을 꾸는 것이 철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더 좋은 삶을 멋진 엔딩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삶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