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하다는 그룹과외 말이에요,

<대치동 삽니다>

by 수레 soore


고윤은 아주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가진 친구였다. 꼭 고양이가 우는 소리처럼 누구든지 한 번만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그 독특한 목소리로 그녀를 기억하는 이도 있었지만 사실 그녀보다 유명했던 사람은 그녀의 엄마였다. 우리 모두는 그녀의 엄마를 알고 있었다. 차유의 엄마는 이 구역 유명한 돼지엄마였다.


돼지엄마
명사_ 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를 이르는 말



peer pressure, 그러니까 오로지 ‘옆에서 친구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성적 내지 등수란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학교 컴퓨터실 앞에서 나는 고윤을 붙잡고 물었다.


“너 무슨 학원 다녀? 이제 곧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걱정도 좀 되고 해서.”


고윤은 아주 고맙게도 청산유수처럼 학원 리스트를 쏟아냈다.


“수학·영어는 A, 과학은 B학원, 논술은 C학원 다녀.”


난 그 친구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나 많고 많은 학원 중에서 콕콕 잘도 집어 다니고 있었다니. 같은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고윤은 학원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어가 고민이면 국어학원을, 수학이 고민이면 수학학원을 소개해줬다. 고윤은 자신의 엄마가 학원가에서 발이 넓은 사람인 걸 늘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언니도 연세대에 합격했다고.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엄마가 나를 부르더니 대뜸 과외를 하라고 했다. 고윤의 엄마가 아주 유명한 영어 선생님을 하나 알고 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영어 문법은 확실히 잡고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고윤의 엄마와 통화를 끝낸 우리 엄마는 확신에 차있었다. 아줌마는 우리 엄마를 ‘자기’라고 부르며 그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설명했다. 물론 그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학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알아볼 시간도 없이 일로 바빴던 우리 엄마는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유명한 과외선생님과의 수업은 꼭 비밀작전 같았다. 나 말고도 6명의 동창생이 함께하는 그룹과외였는데 지금까지 해온 과외와는 달랐다. 의대생을 집에 불러놓고 모르는 문제 몇 개를 물어보며 엄마가 가져다준 빵 내지 떡을 먹으고 담소를 나누는 그런 화기애애한 현장이 아니었다. 장소는 창문이 모두 까만 시트지로 덮여있어 밤에도 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학원이었다. 무슨무슨 학원이라고 간판은 붙어있었지만 장소 대여로만 쓰고 있는지 우리의 수업시간에 다른 교실은 텅텅 비어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영어수업만 들었는데, 나와 고윤을 제외한 나머지는 영어 수업 바로 직전에 국어 그룹과외수업을 들었다. 연달아 수업을 듣는 아이도 있고 다른 학원에 갔다가 바로 오는 아이도 있었기 때문에 8명의 엄마가 돌아가면서 매주 도시락 업체에서 도시락을 준비했다. 고윤의 엄마는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서 멋들어진 회색 벤츠를 끌고 와 고윤과 함께 나를 기다렸다. 그 차를 타고 무슨무슨 학원에 가 누군가의 엄마가 준비해 놓은 도시락을 먹고 나면 수업이 시작되었다.



대치동 학원가



두 시간 수업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시간은 단어 시험, 30분은 숙제 검사, 나머지 30분은 선생님이 카투사로 미군부대에 복무하던 시절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체 제작한 단어장과 독해 교재로 숙제를 내줬는데, 300 단어를 외우고 독해 교재 서너 쪽을 푸는 것이었다. 주로 수능 기출문제, 모의고사 빈출 단어 따위로 이루어진 숙제를 끝내고 수업에 가면 단어시험을 보고 독해 과제를 짧게 리뷰하고 나서는 카투사 시절 재밌었던 일들을 말해줬다. 친한 미군이 하도 가래침을 많이 뱉는 바람에 가래가 lung butter라는 걸 알게 된 썰, 절대 해병대를 지원하면 안 되는 이유 등등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깔깔깔 웃다가 보면 집에 갈 시간이었다.


글쎄, 아직도 가래침이 영어로 lung butter라는 게 생각나는 걸 보면 나는 그 시간이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난 그 이후로 다시는 고윤을 따라, 아줌마를 따라 그룹과외에 합류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치동을 꿰뚫는 아줌마라도 수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결코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자체 제작한 교재가 있고, 한 팀 한 팀 수업한 경력이 쌓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엄마가 겨우 모시고 온 유명한 선생님’을 부정적으로 피드백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너무 당연했다. 늘 숙제에 시달리고, 몰아치는 학원에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느라 바빴다. 무엇을 얻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그건 엄마도, 나도 편한 일이었다. 속 편한 일이었다.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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