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학원부터 가

<대치동 삽니다>

by 수레 soore


오늘도 동생과 한바탕 했다.


어느 날부터 훌쩍 크기 시작하던 동생이 나보다 커지면서부터 우리는 더 이상 몸으로 싸우지 않았다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어서다). 그렇다고 우리의 긴 싸움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말싸움의 시작이었다. 주로 말하는 쪽은 나,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쪽은 그 애였다. 우린 늘 같은 주제를 가지고 빙빙 돌았다. 오늘도 그랬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동생과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얼굴 보는 날이 드물었다. 나는 늘 학교에 있었다. 동기들은 나를 중도지박령(중앙도서관에 하루 종일 박혀있는 영혼)이라고 불렀다. 새벽에 집을 나서고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갔다. 학교에서 수업, 공부, 아르바이트를 모두 해결하고 집에 돌아가면 이미 자정이 훌쩍 넘기 일쑤였다. 가장 익숙한 얼굴은 가족들의 자는 얼굴이었다.


동생은 나와 다른 이유로 바빴다. 학교에 가서 하루의 절반을 보내고 나면 곧장 학원으로 갔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학원에 과외에 대치동을 뺑뺑 돌고 집에 돌아왔다. 새벽에 도어록을 누르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 아빠는 인기척에 몸을 뒤적였는데 내 동생은 그런 것도 없었다. 꼭 기절한 것처럼 잠을 잤다.


우리 둘 다 공부를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이 동네에 사는 게 좀 수월했겠지만, 나는 평생이 자책이었다. ‘왜 나는 책상에 진득이 앉아있지를 못하는 거지?’ ‘왜 나는 집중력이 이렇게나 부족한 거지?’ 독서실에 앉아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한 시간씩 공부 자극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중위권 공부법’ 따위의 책을 사 모으는 동생은 꼭 나를 닮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온 동생이 낮잠을 잔다고 들어가서는 두 시간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습관처럼 마음이 조급해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소리쳤다. “몇 시간째 자고 있는 거냐고!” 이미 침대에 몸이 붙어버린 그 애와 잡아 일으켜 세우려는 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렇게 살아서 대학은 어떻게 갈 거냐느니, 그러니까 공부를 못한다느니 송곳 같은 말들을 퍼부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는 가장 끔찍한 사람이 되었고 그 애는 내가 되었다.


그 애는 내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그 길에서 나는 불행했는데.


내가 걸어온 길을 조금도 벗어날 수 없게 다그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학원을 다섯 개 여섯 개씩 다니고 잠잘 시간에 잠자는 나를 한없이 원망하고 자책하던 지난날이 그려졌다. 그 길은 끔찍했는데 달리 아는 길이 없었다. 그래서 습관처럼 동생을 다그쳤다. 내가 아는 길이 하나뿐이라는 변명으로.


다른 길을 찾아 헤매기엔 눈앞에 닥친 일들이 너무 많아. 그 애는 그렇게 말했다.

다른 길을 찾아 헤맬 시간이 어디 있어, 그것도 다 성적이 받혀줘야 하는 얘기지. 열일곱 살의 내가 말했다.


문을 쾅 닫고 집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닮았다고.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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