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책을 잘못 읽었을지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책을 읽을 때 작가 소개부터 에필로그, 책을 펴내며 같은 본문 이전과 이후의 글들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땐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권장도서 등의 강압적인 독후감을 위한 독서를 시작하면서 ‘본문 읽기도 바쁜데 이건 뭐야’라는 듯한 느낌으로 나머지 부가적인 요소는 자연스레 책의 겉표지처럼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서론부터 에필로그까지 다 읽는 게 독서지! 안 그럴 거면 책은 왜 읽냐?!' 같은 허세성 가득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말인즉슨 책의 겉표지에 있는 작가, 출판사 등의 정보부터 보통 마지막에 적힌 인쇄 발행 일등까지 모두 다 읽지 않는 건 독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말투는 허세 성이 다분했으나 내뱉어지는 말들은 단순히 허세라고 치부하기엔 내가 읽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정당성과 타당성을 서술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읽고 싶은 새로운 책을 집어 들었던 어느 날, 책장을 펼치는데 '이 책을 펴내며'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시간 이후로 앞으로의 모든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글씨를 다’ 읽어보겠노라 생각했다.
불현듯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건 아마도 허세가 가득 담겼던 이야기에 허세보다 못한 지식으로 굴복하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책 표지 바로 뒤에 적힌 저자 소개에서 시작해 서론부터 에필로그까지의 ‘온전한’ 책 한 권 모두 읽기가 시작됐다.
솔직히 처음엔 힘들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읽고 싶었고 사고 싶었고 집어 들었는데 작가에 대한 어쩌면 별 흥미 없는 소개부터, 왜 작가가 책을 출판하기까지 고마운 사람을 열거하는 서론의 책장들을 훑어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한마디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모든 책이 다 똑같진 않다.
가장 첫 글자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한 책들이 한 권 한 권 쌓이면서 짜증스레 품은 의구심은 내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려줬다.
맞다. 모든 책이 똑같지는 않다. 심지어 어떤 책들은 작가 소개와 서론부터 읽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저 본문을 열심히 읽어내리고 줄거리를 파악해 독후감을 써 내려가는 것이 독서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깨달았다.
허세에 지기 싫다는 오기와 다짐에서 시작된 습관이지만 뜻밖에도 그때 허세롭게 이야기해준 누군가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로 그렇게 작가 소개와 서론부터 읽어내려서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느낄 수 있었던 책을 한 권 소개해보려고 한다.
혹시 서론을 읽는 재미를 아직 찾지 못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지레짐작도 해본다.
사진은 '어린 왕자의 눈'이라는 책의 서론 첫 페이지의 내용이다.
조금은 흔하게 접하던 서론의 내용과 사뭇 다른 이야기들이 적혀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어린 왕자의 눈'은 책 제목처럼 작가가 어린 왕자를 읽고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유명한 어린 왕자에 관한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그가 왜, 어떻게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이 책을 썼고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서론에 조금 더 명료하게 정리되어있다.
또한 작가 소개에서 밝혀진 이 책의 작가는 '저우바오쑹'이라는 홍콩 출신의 정치철학자였다.
대뜸 본문부터 읽어도 꽤나 괜찮았다고 기억할 책이었지만, 철학자라는 작가의 본래 직업과 어린 왕자, 그리고 에세이라는 세 가지 맥락이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의 철학자로서의 관점이 담긴 어린 왕자의 분석은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은 이색적이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나만의 추천도서가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어린 왕자'에게 집중했던 시각을 벗어나 장미와 여우를 찾았다. 그리고 자유와 책임, 고독, 길들여짐, 사랑이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고민했으며 그것들을 독자에게 전해 또 하나의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했음을 적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담겨있으며 독자들이 작가가 쏟은 관심의 부분을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음을 서론에 기술하고 있다. 무언가의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는 철학가의 언어는 어찌할 수 없나도 싶지만, 그만큼 작가가 느끼고 적은 것들이 많았기에 반복하여 언급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가 의도한 포인트가 맞을지는 알 수 없으나, 본문을 읽은 나 또한 많은 부분에서 멈추었다.
이 책에는 어쩔 수 없게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린 왕자와 장미, 여우를 만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동화로 그쳤을 작은 부분들조차 장미와 여우의 입장에서 끄집어내 준 포인트들이 적지 않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추천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어린 왕자는 생각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특히 장미와 여우에게 있어선 나쁜 놈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