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니는 양손 멀쩡하니 뭐든지 할 수 있다.

나의 할머니.

by 졔졔맘

고등학교 중간고사를 앞둔 주에 우리 집에 와계셨던 할머니는 늦은 밤에 공부하는 언니와 나를 위해 컵라면 끓여주곤 하셨다. 새벽잠이 깨면 어김없이 돌아다니셨기에 밤늦게 공부하는 우리가 대견하고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거의 다 끝나가요. 먼저 주무세요.”

“그래. 고생해라.”

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뒤늦게 할머니랑 자고 싶어서 이불속에 비집고 들어가면 할머니는 예전처럼 나의 등을 두드려주셨다.

“공부 안 어렵냐?”

“어려워요. 잘하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좀 그래. 해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하는 거야. 할머니.”

학업스트레스가 심했던 시기라 할머니에게 때아닌 투정이었다. 부모님에겐 말도 못 꺼내봤던 투정이었다. 그저 심드렁하게 투덜거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야, 니는 양손 멀쩡하니 뭐든지 할 수 있다. 걱정 마라.”


뭉클했다. 단 한 번도 할머니의 손이 불편해 보인다거나, 부끄러웠던 적도 없었다. 매번 포크로 음식을 드실 때도, 세수도 제대로 못 하실 때도 그러려니 했었다.


나의 외조모는 내 기억이 있던 시절에도 양손이 불편했다. 팔꿈치가 접힌 상태에서 굳어버려 펴지지 않았고, 손목도 뻣뻣해져 거의 구부러지지 못해서 제 기능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손가락도 상황은 비슷했다. 마디마다 굵어지고 뒤틀려져 버린 나무뿌리처럼 단단해서 젓가락질도 못 하셨다. 두꺼워지고 비늘처럼 과하게 반들거리는 피부는 그 세월만큼이나 노화의 모습을 뚜렷이 보여줬었다.


어린 나이에는 할머니들의 손은 다 저런 줄 알았다. 잡아보면 오래된 질긴 고무 같은 물렁거림과 단단함이 공존하는 손. 거친 손바닥 안에 나의 작은 손은 쏙 들어갔고, 굵어진 두 번째 손가락을 꼭 잡고 다니길 좋아했더랬다.


나는 주로 할머니와 돌아다녔다. 집에 가만히 계시길 싫어했던 할머니는 서울 여기저기에 살고 있는 이모할머니-매번 만나는 분마다 이모할머니였다. 정말 친척인지도 모르지만 통칭해서 그렇게 불렀다.-들을 방문할 때마다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다닐 때 신이 났다. 장난감도 없고 친구도 없는 낯선 곳이었지만 저마다 다른 집안 구조며, 집기들을 둘러보고 내주는 달콤한 간식도 좋았다. 가면 인사를 하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이모할머니들의 어깨를 조물조물 주무르며 안마를 한다든지, 뜬금없이 노래를 시키는 어른들 앞에서 삐쭉거리면 그 모습도 귀엽다고 노래를 안 해도 용돈이 쏟아졌다. 그리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 등에 업혀서 할머니 목 뒤에 작은 점을 눌러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그 투박한 손으로 엉덩이 툭툭 거의 때리듯이 두드려주는 느낌에 더 깊이 잠 속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 투박했던 손.. 나를 재울 때 무심한 듯 무겁게 건드리는 것 같이 두드려주던 그 손이 너무 그리웠다. 간밤에 첫째를 재우면서 자장자장해달라고 해서 엉덩이를 무심하게 두드렸는데 그 동작도 꽤 팔이 아팠다.

그러다가... 정말 문득.. 누군가 갑자기 노크를 하듯이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 불편한 팔은 얼마나 아팠을까.


아이가 4-5세 정도 되면 그래도 꽤 무게가 나간다. 나는 그 나이 때에도 할머니에게 매달리기 일쑤였다.

칭얼거리고 수시로 안아달라고 했기에 무거운 나를 그 양팔로 안고 업고 하셨던 나의 할머니.


그 깊은 밤에 다 큰 손녀딸이 할머니의 투박한 손을 잡고 잠들면서 할머니의 불편함과 아픔을 알지 못했듯이, 할머니의 덤덤한 손길처럼 던진 작은 위로가 이렇게 불현듯 떠오를지도 몰랐다.


돌아가신 지 꽤 됐다.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 L-tube, C-line, EKG, 온갖 수액이 연결되어 겨우 눈만 뜨고 계셨다.

바빠서.. 정말 너무 바빠서.. 여전히 다른 핑계를 찾을 방법이 없어서 들이대는 그 핑계 삼아..

그때서야 임종이 얼마 안 남았다고 했을 때야… 얼굴을 보러 갔다.

뼈 밖에 안 남은 그 작디작은 체구가 기계에 잠식되어 가는 것 같았다. 나를 알아보고 그 손을 작게나마 들어 올리셨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다.


나는 여전히 납골당에 가면 중환자실에 그 눈빛과 흔들었던 투박한 손짓이 생각나곤 한다. 그러면 항상 눈물이 차오르면서 절제되었던 감정이 고삐를 풀어버리고 마구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정말 말이 안 나온다. 항상 단 한마디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보고 싶어요. 할머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는 내 말에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