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그렇게 듣기 싫었던 걸까.
우리는 매번 같은 주제였다. 그리고.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지독하게 나의 불편함-그것이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을 참지 못 한다.
문제점이라고 생각한 상대든 물건이든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이든 집요하게 달려들고
당장 안된다면, 머리의 한 구석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생각하며 질려버리는 꾸준함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성격임을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 너가 되었다. 나에게 더없이 행복함과 사랑의 풍족함을 알려줬던 너가 나의 불편함이 되었다.
사람이 꽉 들어찬 강의실.
맨 앞에서부터 두 번째 줄에 앉았던 너에게 동아리 총무로써, 새 단원에게 홍보를 위해서 다가갔었다.
우주라는 생소한 주제의 책을 읽고 있던 너를 보며
'이상한 놈이 동아리에 들어왔다.'
까만 피부에 동그란 얼굴, 마른 체형,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던 너는 나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못 보던 생명체를 보는 느낌. 나도 그랬다. 못 보던 생명체. 특이한 느낌의 남자 사람.
한편으로 소심해 보이고, 한편으로 말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행동이 빨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너무 느리기도 한 너를 보며 정말 못 보던 생명체가 맞다고 확신했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유머에 너의 농담에 대화는 끊김이 없었다.
어느 순간이었는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빠져들었다.
커진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신감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졌던 시기였기에 들떠있는 감정이 풍선이 되어도, 억지로 꾹꾹 눌러 담담하게 너를 대했다.
또 가끔은, 너의 마음은 알지 못한 채, 어쩌면 이 것은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풍선을 계속 위로 위로 떠올렸다.
"언니, 그 오빠가 나한테 고백을 했어."
서울 집에 다녀온 날, 친한 동기가 나에게 말했다.
시야가 좁아졌다. 시야가 너무 좁아져서 바늘구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쪼이는 느낌이었지만, 머리가 더 아팠으며, 손에 힘이 빠졌지만 주먹은 엄청 세게 쥐어졌다.
별 느낌은 없었다. 감정이라고 부를만한 뭔가가 들지 않았다.
귀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뭘 하는지 뇌에서 보내는 신호에 답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뇌가 일을 했던 건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동기에게...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알아서 하라고. 걱정 말고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그저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어."
고생했다고 마음 많이 쓰였겠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안쓰러웠다.
동기는 마음이 여린 아이였고, 나보다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더 안쓰러웠다. 마음을 받는 입장도 편하지 않다는 것을 동기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마음이라는 게 너무 웃겼다. 그 아이를 이해하 듯, 너를 이해했다. 바위 같은 자존심에 흔들릴 자신이 없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 걱정스러웠다. 쉽게 그리도 쉽게 연락했던 메신저를 열지 못했다. 거리를 두는 것이 그리고 나의 마음도 너에게 편하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아버렸기에 더욱이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빠 OO이 잘 챙겨줘요. 많이 힘들 거 같아서요.”
“….
………니 걔 좋아하나? “
짙은 대구 사투리를 쓰는 너의 룸메이트 오빠의 말이 부끄러운 민낯에 갑자기 들이밀어진 거울 같았다. 며칠 연락도 못 했고 강의실에서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으며 동아리 활동도 없었기에 거의 며칠 너의 얼굴과 소식을 단절하고 지낼 때였다. 그래서 잘 숨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그 거울이. 나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내 마음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눈에 어느새 가득 차버린 눈물이 더 이상은 숨길
수 없는 그 마음을 대변해 버렸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충동적인 감정도 아니었다.
이건 나의 심연 속에 깃든 확실한 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