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로 Oct 30. 2024

미루고 미루다, 건강 검진

26/30


이틀 뒤면 11월이다. 건강 검진을 미루고 미룬 이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는 달이다.


출생 연도가 0으로 끝나는 나 역시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 검진 대상자다. 내과에서 일반 건강 검진을, 치과에서 구강 검진을, 산부인과에서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12월 중순까지 꽉 채워서 미루는 바람에 1월호 마감을 넘기자마자 다른 직원들과 함께 회사 근처 내과로 향하기도 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닌지 내과는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연초라면 금방 끝날 검사가 한 시간씩 걸렸다.


요즘은 가급적 6월을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것은 몇 살이 되어도 가기 싫은 법. 오늘에야 자궁경부암 검진을 끝으로 모든 검사를 마쳤다. 가만 보면 병원을 가는 순서에도 루틴이 있다. 그리고 그 루틴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반영한다.


1) 일반 건강 검진: 아직까지는 모든 항목이 정상 범위 안에 들어간다. 자연히 병원으로 들어서는 발걸음도 가볍다. 대개 상반기 중으로 끝난다.


2) 구강 검진: 스케일링과 묶어서 진행한다. 어릴 때부터 치아에 돈을 쏟아붓다시피 했는데(교정, 인레이 등) 아직도 치료할 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번에도 구강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신경치료형에 처해졌다. 그것도 두 개나. 치실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몇 번째인지 모를 맹세를 해 본다.


3) 자궁경부암 검진: 산부인과의 문턱은 높다. 평일 낮에도 사람이 많다. 의료 행위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부끄럽다. 6년 전인가 비정상세포가 발견되어 조직 검사를 받은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점막을 석둑 잘라내는(잘라낸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느낌은 지금도 기억에 선연하다. 그러다 보니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아무튼 건강 검진은 모두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는 우체국에 들러 생존급부금을 받았다. 살아 있다고 주는 돈을 받자니 평소에는 공기처럼 그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던 '생존'이라는 것이 의식 속에서 질량을 띤다. '건강 관리 잘 해야지.' 그때 도착한 메시지 하나. "오는 길에 AA 건전지 8개만 부탁할게" 마침 홈플러스가 근처다. 건전지만 사기 아까우니까 새로 나온 과자와 술도 기웃거린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3주 동안은 건강한 사람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6개월 간의 보컬 레슨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