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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면 11월이다. 건강 검진을 미루고 미룬 이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는 달이다.
출생 연도가 0으로 끝나는 나 역시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 검진 대상자다. 내과에서 일반 건강 검진을, 치과에서 구강 검진을, 산부인과에서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12월 중순까지 꽉 채워서 미루는 바람에 1월호 마감을 넘기자마자 다른 직원들과 함께 회사 근처 내과로 향하기도 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닌지 내과는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연초라면 금방 끝날 검사가 한 시간씩 걸렸다.
요즘은 가급적 6월을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것은 몇 살이 되어도 가기 싫은 법. 오늘에야 자궁경부암 검진을 끝으로 모든 검사를 마쳤다. 가만 보면 병원을 가는 순서에도 루틴이 있다. 그리고 그 루틴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반영한다.
1) 일반 건강 검진: 아직까지는 모든 항목이 정상 범위 안에 들어간다. 자연히 병원으로 들어서는 발걸음도 가볍다. 대개 상반기 중으로 끝난다.
2) 구강 검진: 스케일링과 묶어서 진행한다. 어릴 때부터 치아에 돈을 쏟아붓다시피 했는데(교정, 인레이 등) 아직도 치료할 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번에도 구강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신경치료형에 처해졌다. 그것도 두 개나. 치실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몇 번째인지 모를 맹세를 해 본다.
3) 자궁경부암 검진: 산부인과의 문턱은 높다. 평일 낮에도 사람이 많다. 의료 행위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부끄럽다. 6년 전인가 비정상세포가 발견되어 조직 검사를 받은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점막을 석둑 잘라내는(잘라낸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느낌은 지금도 기억에 선연하다. 그러다 보니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아무튼 건강 검진은 모두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는 우체국에 들러 생존급부금을 받았다. 살아 있다고 주는 돈을 받자니 평소에는 공기처럼 그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던 '생존'이라는 것이 의식 속에서 질량을 띤다. '건강 관리 잘 해야지.' 그때 도착한 메시지 하나. "오는 길에 AA 건전지 8개만 부탁할게" 마침 홈플러스가 근처다. 건전지만 사기 아까우니까 새로 나온 과자와 술도 기웃거린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3주 동안은 건강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