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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정 Jul 16. 2024

약혼은 이렇게 파탄납니다

그 사람을 잃는 것, 그것은 세계의 종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희가 차갑게 말했다.


나도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저릿하고 머리가 무거웠다.


"그럼 계속 이렇게 살자는 얘기예요? 계속 이 반지하에서 살자고요?" 세희가 내 품에서 빠져나와 냉랭하게 말했다.


세희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결혼할 수 있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반지하 원룸에서 아기를 어떻게 낳고 키워요?" 세희는 내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세희를 끌어안으려 했다. 세희의 작고 부드러운 품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세희는 나를 매섭게 뿌리쳤다.


"나는 아기를 낳고 기를 집도 없네요?" 세희가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대단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니고 무리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내가 살 집 한 칸 없다는 거네요?"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이마를 짚자 세희의 눈썹이 올라갔다. 당신 말을 듣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때 한 줄기 섬광 같은 통증이 내 정수리부터 왼쪽 턱, 어깨 아래를 지나 허벅지까지 전기처럼 순식간에 사선으로 내리 꽂혔다. 나는 강렬한 고통에 숨을 들이쉬며 눈을 떴다.


세희는 기가 막힌 듯 팔짱을 끼고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통증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이마를 문질렀다.


"아기는 미래의 일이잖아요." 내가 가까스로 말했다.

"난 미래를 이야기할 자신이 없는 남자와 못 살아요." 세희가 속삭였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슨 철부지 같은 소리예요, 그게?" 세희의 얼굴에는 질린다는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세희가 이렇게 낯설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카페 매니저 일로 싸웠던 날, 독이 오른 세희의 생경한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런 얼굴은 처음이었다.


나는 세희를 잃을까 봐 덜컥 두려워졌다. 세희를 잃는 것, 그것은 세계의 종말이었다.


"그럼 당신 혼자 살 때처럼 놀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당신 혼자 하고 싶은 대로 살 거면 결혼을 왜 해요?" 세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날카롭게 물었다.


"혼자일 때보다 고통받기 위해 결혼을 하겠다고 했던 건 아니에요."

큰소리로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여전히 크지 않았고, 오히려 애원조로 들렸다.


"내가 당신이 마음대로 놀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야?" 세희가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당신을 놀게 하기 위해서 요리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과 가정을 이루고, 하나의 팀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을 한 거라고요!"


나는 이 여자를 이렇게 이성을 잃게 만든 나 자신에게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럼 당신도 당신의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세희가 낮게 속삭였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 내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으나 세희가 더 빨랐다.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녁에 일을 더 하라고 알려줬잖아요.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되잖아요. 당신 허우대 멀쩡한 것 하나 보고 이 반지하로 기어들어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옆에서 다 알려줬잖아요. 일을 더 하고 승진을 하면 된다고 했잖아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요?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해? 나는 어떻게 사는 것 같은데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우리 결혼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데, 당신은요? 당신은 뭘 했어요?"

"나는..." 겨우 입을 열어 소리를 냈다.

"글을 썼다고 말하려고요? 그래서 그 글은 결과가 대체 언제 나오는데요?" 세희가 악에 받쳐 말했다.

"하다 보면..." 나는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무책임한 소리를 할 거면 결혼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말아요!" 세희가 날카롭게 외쳤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글도 그만큼 해서 안 되면 포기해야지요. 그런데 당신은 포기할 용기조차 없잖아." 세희가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이 틀렸어요? 결혼을 할 거잖아요. 가정을 꾸려야 하고, 그 가정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현실을 직시할 용기도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하겠다는 거예요? 당신은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결혼은! 주는 거라고요! 내가 가진 모든 걸 주고! 희생하고! 남김없이 내놓는 거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뭐야? 당신은 결혼할 자격이 없잖아!"


나는 당신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려 했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예요? 도대체 항상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답답하게 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무슨 말이라도 좀, "


그때였다. 갑자기 소름 끼치는 이상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어디선가 먼 산에서 울리는 것 같은 길고 섬칫한 공명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직 내가 헐떡이는 소리만 공기 중에서 낮게 흩어졌다. 그리고 정적이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세희의 얼굴을 보았다.


세희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연실색한 세희의 눈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고 코와 입은 질겁을 하여 구겨져 있었다. 얇고 가냘픈 어깨가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세희에게 손을 뻗자 세희가 벌레를 보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것은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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