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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Apr 29. 2024

형 바라기 둘째의 신나는 수학 공부.

형제의 전쟁과 평화


형은 중3, 동생은 초6.



3살 차이, 그것도 중딩이와 초딩이 아들 둘은 서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형 입장에선 이제 귀엽다기엔 너무 큰 데다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동생이 짜증나고,

동생은 형이 너무 좋지만 제 고집도 있어  고분고분히 형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둘은 늘 사랑과 전쟁 모드다. 좋을 땐 한정없이 좋다가 싫을 땐 끝간데없이 싫은, 뭐 그런 사이.

 

둘째는 형이 하는 거라면 뭐든지 따라 한다. 형아는 뭐든 잘하기도 하고 형이 하는 건 뭐든 재밌으니까. 그래서 여태껏 그랬듯 여전히 형이랑 계속 놀고 싶어 형을 졸졸 쫓아다닌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게 귀찮은 듯 언젠가부터 삐딱해진 첫째의 태도. 하긴 여태 데리고 다녀 준 것만도 너무 고맙지. 이제 둘째도 형을 그만 쫓아다닐 때가 되었고.


서로 나이가 들며 어쩔 수 없이 둘이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둘 다 컸다고 제 생각과 제 고집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자꾸 부딪친다. 그래도 또 좋을 땐 둘도 없는 사이같다가도 의견 대립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세 살 차이가 무색하게 싸워댄다. 이젠 아들 녀석 둘이 싸우는 것을 말리기가 버거울 정도이다. 그대로 전쟁과 평화가 극적으로 오간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까?

간만에 형제간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것도 아주 바람직한 스터디 모드로.








"자 봐봐요. 이제 **를 구해볼게요. ~는 나누고 ~로 나누면은.... 이건 ~로 나눠지죠. 이게 바로 국룰이야. 국룰. 알겠죠?"

첫째가 화이트보드를 펜으로 탁탁 치면서 설명했다.


"오케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둘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역시 우리 형아는 잘 가르쳐."



글씨는 말잇못



첫째는 지금 중1 수학인 소인수분해를 동생에게 가르치고 있다. 둘째가 집에서 혼자 동영상을 들으며 공부하다 보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내가 걱정하는 것을 들은 첫째가 돌연 자기가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수학 미리 안 해 놓으면 따라잡기 힘들어. 형아 시험기간 들어가면 시간 없으니까 시간 될 때 빨리 와. 거기 형아 쓰던 중1 문제집 가지고 오고."


형의 말 한마디에 방금까지도 나랑 실랑이하던 둘째의 눈이 번쩍 뜨인다. 억지로 하던 6학년 문제집은 집어던지고 형아 말대로 칠판 앞에 앉아 눈이 반짝반짝하는 녀석.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번엔 최소공배수에 대해 알아보자......(한창 설명이 이어졌다.) .....자, 이제 형아도 한 단원 떼고 올 테니 이것들 풀고 있어. 일단 다 하고 부르세요. 나도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어서."


"알겠어!"


사실 개학을 하자마자 중3이 되는 큰 녀석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수학 학원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수 상과 수 하를 동시에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행히 한 번은 훑은 것이라 어찌어찌 따라가고는 있는데 사실 저도 꽤 피곤할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 수학 강의에 꽂힌 녀석이 제 동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아니, 사실 나는 저가 더 걱정인데.


어쩐지 조금 미안해진 나는 자기 방에서 공부중인 첫째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동생이 자기가 내준 문제를 푸는 사이, 저는 본인 진도를 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혼자 다급해졌던 마음이 슬며시 가라앉았다. 하긴 원래 수 자체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제일 잘하는 과목이기도 하고.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잘할거야.






"형아~"

한참 혼자 문제를 풀던 둘째가 부르자 첫째가 방에서 나왔다. 보드에 풀어놓은 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했어. 역시 내 동생."

"형, 나 좀 똑똑한 거 같아. 히히."

형이 가르쳐준 중등 수학을 이해했단 사실에 둘째의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자, 그럼 다음 거. 이건 중요해, 이건 진짜 꼭 알아놔야 해. 어렵더라도 지금 익혀놔야 나중에 안 힘들어져."

"어, 어."

둘째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형의 설명에 집중했다.


멋진 녀석들, 언제 저만큼 자랐는지. 짠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마음에 나는 한참동안 번갈아가며 둘을 쳐다보았다. 저 정도면 우애 좋은 형제까진 아니더라도 우애 있는 형제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얘기가 딱 이런 기분일 터였. 여보, 큰 녀석이 제대로 밥값을 하네. 쿠헐헐헐. 오늘만 같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의 수업이 끝나고 둘째가 신이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문제집 다시 보면서 오늘 배운 거 복습해."


첫째가 방으로 들어가자, 둘째는 힘들지도 않은지 엎드려서 복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대견해 나는 넌지시 옆으로 앉으며 물었다.


"운아, 형아랑 공부하는 게 재밌어? 혼자는 십 분도 문제 안 풀더니."


그러자 둘째가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형아랑 하면... 재밌어. 혼자 하면 재미없는데."


에고고. 글지, 형이랑 하면 뭐든 좋겠지. ^^


나도 동생들이 있어 안다. 죽을 듯 살 듯 싸우다가도 한데 뭉치면 그 무엇도 거칠게 없는. 아무것도 없어도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제일 큰 무기인, 핏줄로 연결된 형제자매란 이름.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게 제일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이 내 동생인 것처럼 저 둘도 언젠가 서로에게 제일 든든한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문득 예전의 어떤 공익광고가 떠오른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동생이라는. 하지만 어쩌면 진짜 선물을 받은 건 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은 아이들로부터 얻은 부모라는 이름에서 기인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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