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신랑은 새로 바꿀 차를 알아보는 중이다. 본인 차는 아니고 내가 탈 것이다. 몇 가지 차량을 염두에 두고 꼼꼼하게 비교하고 있는데, 다른 물건도 아니고 차인 지라 유독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일반 물건 하나 구매하는 데에도 며칠씩 걸리는 잇티제로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 내가 모는 차는 일명 쎄랑이, 2007년에 구입한 은색 쎄라토이다. 신랑이 십 년 정도 타다 조금 큰 차로 갈아타며 내가 넘겨받게 된 것으로, 아담한 크기로 주차하기도 편하고 은색이라 웬만한 오염엔 티도 잘 나지 않는 데다 옆구리를 살짝 긁어도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 차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애지중지 차상태에 신경 써가며 관리할 깜냥도 되지 않는 나로서는 맘 편하게 탈 수 있는 점이 가장 좋다고나 할까.
문제는 차 연식이 이십 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쎄랑이에 슬슬 돈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미 몇 군데 수리를 하기도 했다. 차량점검상 딱히 문제 있는 부분은 없지만, 앞으로도 여기저기 문제가 생길 조짐이 보인다. 운전 시 소음도 갈수록 커지는 것이 어떨 때는 시동을 걸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 그런 터라 작년부터 신랑은 나에게 적합한 새 차 구매를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물론 돈도 돈이지만, 신랑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운전자인 나다.
"차 바꿔준다고? 시른데~~~~."
작년 내 차 상태를 한동안 지켜보던 신랑의 말에 내가 농담조로 한 대답이다.
십 년 가까이 운전을 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대중교통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솔직히 말하면 운전과 주차가 번거롭기도 하고, 썩 잘하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운전실력과는 별개로 나의 운전이력은 꽤 오래되었다.
1종 보통. 대학 때 운전면허를 따놓기만 하고 장롱에 근 이십 년을 처박아뒀다. 학교 다닐 때는 부산에, 취업해서는 서울에 있다 보니 딱히 차가 필요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했으니까.
그러다 결혼하고 신랑의 일터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차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자차의 도시로 지하철은 없고 버스 이용은 부산이나 서울에 비하면 한참 불편하다. 노선도 적고 배차시간도 길다 보니 버스를 이용하려야 이용이 쉽지 않다. 그래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건강한 두 발로 어찌어찌 버텼는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니 아이들에 짐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여기서도 약간 외곽인 곳에 위치한 지금의 아파트로 분양을 받아오게 되며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었다. 버스 노선이 몇 개 없어 자차로 출퇴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지못해 도로연수를 하고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면허를 딴 지 근 이십 년 만의 일이었다.
운전경력 9년 차.
그렇게 운전을 시작한 지 9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운전은 시외용이 아닌 시내용이다. 주로 출퇴근이나 시내에서만 운전을 할 뿐, 시외로 나간 적이 거의 없다. 딱히 나가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닌데 굳이 나갈 일을 만들지도 않았다. 어디 조금 먼 거리라도 나갈라 치면 베스트 드라이버인 신랑에게 운전을 맡기는 게 제일이다. 사실 신랑은 웬만해선 내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실력은 아닌데, 신랑이 보기엔 영 못 미더운가 보다. 아마 안전이 제일이라 늘 주의하며 신경 쓰는 잇티제 신랑과 달리, 엔프피스런 나의 급한 성격이 은연중에 운전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주차가 아닐 수 없다. 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오른쪽에 대한 감이 없다. 그런 탓에 주차를 할 때면 보이지 않는 오른쪽을 한껏 띄우느라 왼쪽을 바짝 붙인다. 그러다 보니 주차가 수월치 않다. 그나마 후방 카메라가 있어 대부분은 문제가 없지만, 어쩌다 좁은 골목 좌우로 세워진 차들 사이를 지나거나 그 사이에 평행주차라도 할라치면 땀이 삐질 솟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늘지않는 실력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새차는 부담스럽다.
그동안은 남의 차에만 피해를 안 끼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몰고 다녔는데, 이제는 새차에 문콕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주차하다 벽에 긁히지나 않을까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가능하다면 나는 지금의 차를 그냥 죽 타고 싶다. 차량 소음에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나는 또 금방 잊어버린다. 하지만 안전지향인 신랑한테는 안 될 말이다. 신랑은 차량점검은 물론이고 한 번씩 내 차를 운전할 때마다 차량에 무슨 문제는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해서 조만간 어떻게든 차를 바꿔주려는 신랑은 잊을만하면 이 차를 보여줬다가 저 차를 보여줬다가 하며 나의 의사를 타진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것은 기껏해야 디자인이나 주차 용이성 정도이다. 차는 나의 관심 밖이기도 하고, 차에 대해 잘 모르니 더 의견을 개진하려야 할 게 없다. 나는 차를 '대형, 중형, 소형'이나 '세단, suv' 또는 '흰색, 검은색, 은색' 정도로 구분한다. 암만 봐도 다 거기서 거기다. 때문에 검은색 세단을 신랑 차로 알고 문을 연 적이 부지기수고, 내 차 또한 잘못 보고 남은 차 손잡이를 붙잡고 씨름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 연유로 신랑 혼자 내 차를 고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형세다.
그러던 어느 저녁의 일이다. 저녁식사 시간에 식탁에 둘러앉다 말고 신랑이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내가 아닌 아이들에게 골라둔 차 하나를 보여주며 "얘들아, 이거 엄마 차로 어울릴 거 같아?" 했다.
그러자 별생각 없는 첫째와 달리 둘째가 고개를 흔들며 "아니" 하고 대답했다.
신랑이 두 번째 차를 보여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이건?"
"그것도 아니."
"그럼 엄마한테 뭐가 어울릴까?"
그러자 둘째가 냉큼 말했다.
"엄마는, 지금 엄마차가 딱이야!"
흠, 흠. ㅡㅡㅡㅡㅡ;;;
아무래도 아빠 차와 엄마 차를 번갈아 타면서 저도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어린 제 생각에도 어설픈 실력의 엄마에게는 지금의 차가 딱 맞아 보였나 보다(어째 쓰고 나니 조금 슬프네ㅋ).
그리하여 우리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신랑은 스스로 만족스러울 만큼 충분히 시승기를 찾아보고 가격을 비교분석하는 중이고,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신랑이 조만간 내게 맞는 최적의 결론을 내리리라 믿고 기다린다. 물론 그때까지 내 오래된 친구 쎄랑이가 무사히 잘 버텨주리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