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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May 13. 2024

사계절 반팔에 반바지만 입는 너란 녀석.


첫째 아들 녀석은 반팔에 반바지를 좋아한다. 패션에는 1도 관심이 없고, 옷은 그저 편한 것만 찾는다.

덕분에 나는 좀 편하다. 딱히 브랜드를 따지지 않으니 저렴이로 대충 사줘도 주는 대로 잘 입고, 이제는 이만큼 커서 아빠가 못 입고(나잇살이 많이 붙어버렸죠) 옷장에 박아둔 옷까지 차례차례 물려 입으니까.


그런데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어딜 갈 때 조금 갖춰 입어야 하는 자리면 상당히 난감하다. 불편한 옷을 못 입는 관계로 스포츠웨어 밖에는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줘도 안 입는 관계로 옷장에서 고이 잠자는 옷이 몇 개 있긴 하다. 예를 들면 니트라든가 긴 청바지 같은. 그런데 불편한 것도 불편한 거지만 더운 게 제일 문제다.


우리 집 남자들은 다 더위를 많이 타지만 첫째는 유독 더하다.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도 전인 6월부터 더워서 허덕허덕하고, 심지어는 겨울에도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다닐 정도. 한그런다고 감기에 안 걸리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겨우내 여름 패션으로 잘 다니다가도 꼭 끝물에 감기에 걸리고 만다. 그러다 보면 새 학기 시작할 때쯤에는 다크서클이 이만큼 내려와서 힘들어한다. 그런 연유로 한겨울에 교복을 동복 대신 하복을 입고 등교하는 것을 보면 속에 천불이 나지만, 하는 수 있나... 그냥 겉옷이라도 잘 챙겨 입고 가길 바랄 뿐(그나마 겉옷도 한겨울에도 경량패딩 하나로 버틴다는ㅡㅡ)이다.






그런 아들의 유별난 반팔, 반바지 사랑 덕에 나는 본의 아니게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이 여러 번이다.


한 번은 아들과 함께 도서관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한겨울 아들의 기이한 행색을 보더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마디를 했다.

 "아니, 얘를 한겨울에 옷을 이렇게 입히면 쓰나."

 "아, 얘가 더위를 너무 많이 타서요..."(처음 보는 사람한테 내가 왜 이걸 설명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 아주머니만 유독 오지랖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한겨울 아이의 옷차림이 얼마나 괴상망측했을지. 영하의 날씨의 찬바람 쌩쌩 부는 아침에 경량패딩만 간신히 입힌 반바지 아래로 맨다리가 덜렁 나와있으니, 나름 걱정을 해 준 것이리라.


그런데 그 정도는 사실 웃어넘길 정도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아이와 같이 있지 않을 때이다. 특히 학교.


초등 6학년 때, 갑자기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오는 전화란 절대, 네버 좋을 일이 없는 탓나는 바짝 긴장한 채 전화를 받았더랬다. 그런데 받고 보니 내용이 이러했다.


녀석이 겨우내 여름 복장으로 다니는 터라 지나가는 선생님마다 한소리를 하고 지난다는 것이었다. 물론 담임선생님도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을 테고. 그런데 통화를 하다 보니 선생님의 말투에서 그즈음 한참 문제가 되고 있던 이슈인 '아동 방임' 의 뉘앙스가 살짝 묻어났다. 곧바로 사태파악을 한 나는 얼른 설명을 드렸다. 아이가 너무 더위를 많이 타서 겨울옷을 잘 못 입어 그나마 겉옷만 챙겨 입혀 보내는 거라고. 하지만 선생님은 계절에 맞는 긴 옷을 입혀주기를 부탁하셨고, 나는 그러고마 대답했다.


아들이 하교한 후, 나는 아들에게 낮의 일을 이야기했다. 이러저러해서 선생님과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 내일부터는 복장을 제대로 갖춰가자고. 선생님 말인지라 다음날 아들은 고분고분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학교를 갔다. 그렇게 잘 입혀 보내고 나니 나도 속이 다 후련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었다.


"엄마, 나 이제 반팔 입고 와도 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저녁을 먹다 말고 불현듯 생각이 난 듯 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아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말이야........."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기가 막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곧이곧대로 잘 입고는 갔으나 딴에는 교실이 너무 덥더란다. 그래서 수업을 들으며 참다 참다 나중에는 혼자 울고 있었다고.ㅜㅜ 결국 그걸 본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아들은 "너무 더워서요." 하고 대답을 했다고;;;; 그 모습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내일부터는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오라고.


그러면서 아들은 신이 나서 저녁을 먹었다.

하, 하하;;;;;; 그런 아들을 보며 나는 어이가 없어 한참 쳐다보다 그냥 웃어버렸다.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아동 방임의 오명은 벗었고, 이제 다른 선생님들도 사정을 다 아셨을 테니 더는 아이에게 입을 떼지 않겠지 싶었다. 덕분에 아들은 졸업 때까지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등하교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중3.

여전히 아들은 한겨울에도 한여름 차림이다. 여전히 지나가던 어른들이 걱정스레 하는 잔소리를 내게 한다. 여전히 옷차림엔 관심 없고, 맨날 검은 티에 검은 반바지, 스티브 잡스도 울고 갈 남다른 패션감각을 지닌 녀석. 


누가 뭐래든 언제나 그렇듯 그저 행복하고 엉뚱한 우리 아들. 그래, 그럼 되었지 뭐. 나는 상관 안 한다. 근데 아들, 너 편한 대로 입고 다니는 건 다 좋은데, 이제 감기는 제발 그만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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