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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May 21. 2024

수맥신이 폭파직전입니다.

아들은 외계인.


지병(?)으로 다리상태아직 온전치 못한 터라 2년 넘게 병원과 도서관 출입 외에는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중이다. 이제 만성이 되어버린 아킬레스건염 때문이다. 그래도 운전은 가까운 거리나마 가능한 덕에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기도 한다. 그래봤자 미리 봐 둔 책들과 타관대출신청한 책만 얼른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것만도 얼만가. 최근엔 다리상태가 조금 나아져 도서관 카페에서 호사스럽게 커피를 한잔 하며 노트북을 펼치기도 하는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은 대부분 내가 읽을 소설책과 아이들이 볼 책들이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지인에게 추천받은 육아서를 하나 빌렸는데, 제목이  <지지해 주는 부모,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이다. 딱 봐도 어떻게 하면 애 공부 좀 시킬까 노심초사하며 애타는 부모의 심정을 간파한 듯한 제목이 아닌가. 잔뜩 기대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책의 한 부분에 딱 꽂힌다.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고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물고기를 잡고 싶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나갈 것이다."


아하, 이제 6학년, 중3을 키우는 부모로서 여러 가지로 와닿는 말이다.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한 동기부여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학습이든 뭐든 본인이 흥미를 느껴서 본인이 원해서 해야지 중간중간 힘이 들어도 끝까지 갈 수 있다. 자신의 목표는 부모가 아닌 자신이 정하는 거니까.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사실을 여실히 느껴왔다. 특히나 자신이 흥미를 가지지 않는 것엔 관심 1도 없는 첫째에겐 학습이 아니라 학습에 대한 흥미를 키워주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들을 참 많이도 했더랬다. 하지만 여전히 정답은 알지 못하는 지라 아직도 여기저기 기웃대는 중이다.






그렇게 책을 빌린 지 2주가 된 어느 날. 시간은 어찌나 잘 가는지. 원체 책을 많이 빌려온 탓에 반납일을 하루 앞두고서야 다 읽지 못한 책을 펼쳐 들고 앉았다. 술술 잘 읽히는 내용이라 금방 다 읽겠구나 하는 참인데 한참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드니 아침, 점심 설거지가 다 그대로다. 개수대가 꽉 찼네 그려~ 쿠헐헐. 요즘엔 거의 먹고 나면 바로 해버리고 있는데, 여전히 정신줄을 잠시 놓으면 원래 하던 대로 되어버리곤 한다. ^^;;;;


하는 수없이 설거지를 시작했다. 한데 그릇은 너무 많고 책은 마저 읽어야겠고. 어떡하나 궁리를 하는데, 큰아들 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노트북으로 유튜브 삼매경이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아, 설거지거리가 너어무 많은데, 다리 아픈 엄마가~~~~"를 시전 하니 조금 미적대던 녀석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반쯤 남은 그릇을 두고 바통 터치. 나는 에헤라~ 쾌재를 부르며 냉큼 커피 한잔을 타서 소파에 앉아 다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엄마, 엄마가 와야겠어. 수맥이 터지려고 해~."

소리야, 벌써 하기 싫어진 건가. 나는 못 들은 척 계속 책을 읽었다.

"엄마, 수맥신이 폭파직전이라니깐."

그 뒤로도 수맥신이 오고 다, 수맥신이 노하셨다 등등 알지 못할 소리를 해대는데, 나는 유유 작작 커피를 마시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아들을 향해 공치사를 했다.

"아들~, 아들 키워놓으니 조오타~"

그러면서 홍홍거리는데 연신 수맥신을 외쳐대던 아들이 갑자기 고무장갑을 내팽개치고 화장실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 엄마. 왜 그렇게 못 알아들어?"


하. 하. 수맥신이 그런 거였어? ^^;;;;;

근데 아들, 그걸 어찌 알아들으라고.

그래도 설거지는 다 하고 들어갔네. 화장실 먼 갔다 와서 해도 되는디. ㅋ


저 멀고도 먼 안드로메다에서 온 우리 큰아들. 지금도 지구인이 알아듣기 어려운 괴상한 언어를 써대는 통에 녀석과의 정상적인 대화의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십오 년을 키웠지만 누가 뭐래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꿋꿋한 녀석.ㅋ 그런 아들에게 내가 부모라는 이름만으로 무엇을 강요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우리 아이들이 과연 '언제, 무슨 물고기'를 잡고 싶어할 그 과정들을 담담히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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