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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Feb 27. 2022

[Lv.11]매일 퇴근 후 '사장님 부캐'로 출근하다.

스터디 카페 창업은 청소 지옥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그것도 투잡으로 사업을 운영하려 하니 초반에는 힘든 날들이 많았다. 분명히 무인 스터디 카페를 개업했는데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의 하루는 다람쥐가 미친 듯이 챗바퀴를 굴리는 모습이었다. 24시간을 아주 꽉 채워 사는 삶은 이랬다.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스터디 카페에 들러 오전 청소를 했다. 청소가 끝나면 허리든, 팔목이든 어디 하나 부서질듯한 몸을 이끌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 업무도 고객사를 응대해야 해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썼다. 고객의 이슈사항을 듣고 전투적으로 처리하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퇴근을 했다. 좀비 떼 같은 직장인들이 어디선가 쏟아져 나와 지하철로 몰려들었고 그들 틈에서 몸을 잔뜩 욱여넣은 채 이동했다. 흔히 말하는 지옥철에서 탈출한 후에는 스터디 카페로 다시 출근을 했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고 나서부터 계속 출근만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장님은 처음이라 많이 서툴러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던  같다. 특히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는데, 무인 사업을  때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개업 직후에는 우리가 시간이  때마다 방문을 해서 직접 정리하려고 했었다. 누군가 엉망으로 해놓고 퇴실해 버리면 이미지가  좋아지진 않을까 걱정되어서였다. 하지만 회사 다니는 상황에서 자주 들러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이용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청결한 공간을 제공하려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곳곳에 안내 문구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보이는 곳에 탁상용 청소도구를 두었다. '이용한 자리는 스스로 정돈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도 함께 남겨 이용자들이 직접 정리하도록 만들었다. 문구는 절대 지나칠  없도록 나가는 문에  붙여놓았다. 신중하게 키가  사람도 작은 사람도    있는 높이를 선정했다. 이후에는 커피 머신 이용법, 사물함 이용법, 분리수거 방법에 이어 '떨어진 얼음은 주워서 버려주세요.'라는 상세한 문구까지 적어두었다. 떨어진 얼음이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작은 얼음들이 만드는 일거리들이 있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그걸 이용자 밟으면 신발에 묻은 흙과 섞이게 된다.  상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결국 바닥에 까만 발자국이 남아 더러워지곤 했다. 안내 문구가 있으니 아무래도 이용자들이    신경을 쓰게 되고 물걸레질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개업 초반에는 필요한 물품을 얼마나 구매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매일매일 종이컵과 휴지 같은 소모품을 사러 다녔다. 순식간에 다이소 VIP  정도로 틈만 나면 뛰어가서 구매를 했다. 이러니 체력이 버텨줄 리가 없는 일과였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점점 노하우가 생겨서 허겁지겁 뛰어다니지는 않게 되었다. 그래도 스터디 카페 운영을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먼저, 분리수거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회사에서 얼음이 든 컵을 그냥 버리거나, 자리 옆 쓰레기 통에 종이와 플라스틱을 구분 없이 버리곤 했었다. 무인 공간에서 이런 행동은 대참사였다. 음료가 들어있는 채로 버려진 컵은 쓰레기통을 흥건하게 젖게 했고 주위로 초파리들이 꼬였다. 바닥에 쏟고 나서 그냥 가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쓰레기차가 수거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팔을 겉어 붙이고 작업을 시작했다. 손으로 쓰레기통을 파헤쳐 플라스틱, 종이, 캔을 따로 분류했다. 버블티가 담긴 음료병이 버려진 날은 가장 분류하기 힘들었다. 징그럽게 많이 들어있는 펄은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고, 컵 홀더와 빨대는 종이 쓰레기, 음료가 묻은 페트병은 물로 씻어야 했다. 뚜껑이 열린 채로 쏟아져 있으면 펄을 줍느라 야간작업 돌입이었다. 그 외에도 커피 머신 세척, 싱크대 닦기, 흘린 과자 치우기 등 3평 정도 크기의 카페 공간에서도 손이 참 많이 갔다.


 서른여덟 개의 책걸상이 있는 스터디 공간 청소는 할 일이 배로 많기 때문에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먼저 책상 위에 쌓인 지우개 가루와 먼지를 털었다. 책상에 연필 낙서도 많이 생겨서 베이킹 소다를 뿌려 닦아 주어야 했다. 대체 학생들이 왜 이렇게 책상에 낙서를 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부러진 샤프심이 책에 눌리면 쭉쭉 연필 낙서가 그려졌다. 이런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신경 쓸게 많다 보니 대형 규모를 운영하는 다른 사장님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어차피 시기가 코로나 시국이라 소독도 필요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칙칙 베이킹 소다를 뿌려댔다. 책상 청소가 끝나면 허리를 숙여 의자의 먼지도 털고 닦아주어야 하는데 '이러다 허리가 남아나지 않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은 본격적으로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찍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서 청소 시간을 새벽으로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용자가 한 두 명씩 공부를 하고 있어서 소음이 나지 않도록 빗자루로 청소를 했야 했다. 어딘가 잘못 힘들 주는 건지 팔목이 끊어질 거 같았다. 그 와중에 더 일찍 일어날 생각은 안 하고 좋은 빗자루를 찾아 다섯 번 정도 바꾸고 나서야 빗자루의 한계를 인정했다. 이후에는 좀 더 새벽같이 일어나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질을 했다.


 청소 중에서 가장 싫은 건 화장실 청소였다. 집에서도 화장실 청소를 잘하지 않다 보니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어느 순간부터 악취가 진동을 했다. 화장실은 1층과 2층 사이에 위치해 있고, 스터디 카페는 지하인데도 화장실과 가까운 좌석은 악취가 스멀스멀 날 정도였다. 스터디 카페 이용자들도 화장실에서 마스크를 써도 악취가 뚫고 들어온다는 문의를 했다. 


 인터넷에 '하수구 악취 없애는 법'을 검색하여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가장 먼저 휴지통부터 변경했다. 화장실에 둔 휴지통은 버튼을 누르면 열리고 사용 후에는 뚜껑을 직접 닫아주어야 하는 방식이었는데, 다들 뚜껑을 닫지 않고 휴지를 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찝찝하게 직접 뚜껑을 닫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자동으로 닫히는 휴지통으로 바로 교체를 했다. 휴지가 많이 쌓일수록 악취가 나는 것 같아서 번거롭더라도 작은 휴지통을 샀고 자주 가서 비워주고 있다. 찾아보니 악취를 없애는 약품들도 많았다. 소변기 탈취제, 변기 클리너, 락스 등을 사서 관리했더니 조금씩 정상적인 냄새로 돌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끊이질 않았다. 청소할 때마다 어디선가 자꾸 담배 냄새가 났다. 알고 보니 변기 뒤에 재떨이까지 두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당장 재떨이를 가져다 버리고 상가 내 흡연 시 과태료 10만 원이라는 문구를 붙였다. 확실히 안내문이 효과가 좋아서 더 이상 흡연자는 없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도 많았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똥냄새가 진동을 했다. 휴지통은 비운 상태였고 락스를 뿌려도 그 순간만 사라지고 어디선가 냄새가 자꾸만 올라왔다. 알고 보니 대체 어떤 자세로 변을 본 건지 변기 안쪽에 잔뜩 묻어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보자마자 바로 '우웩' 헛구역질이 나왔고 눈물, 콧물 다 빼면서 뜨거운 물을 부어댔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뜨거운 물에 닦이지도 않았다. 소름 끼치게도 물을 부으며 솔로 문질렀어야만 지워졌다. 문득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사업을 시작한 건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렇게 청소를 해도 무인 스터디 카페의 특성상 100프로 완벽하기는 어려웠다. 간혹 변기가 막혔다고 연락이 오거나, 특정 좌석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컴플레인을 받기도 했다. 어느 날은 분리수거를 하다 우연히 구겨진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다가 종이에 물이 번져서 버린 듯했다. 호기심에 앞부분을 보게 되었다.


 -여기 스터디 카페는 다 좋은데, 화장실이 개더러워. 너가 공부하는 곳은 괜찮지?


 시험기간이라 특히 이용자가 많은 날이었다. 이렇게 친구한테 쓰는 편지에 남길 정도라니 불편함을 많이 느낀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개더러워'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결국 모든 일은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청소시간이 많이 단축된 데다가, 장기 이용 고객들이 규칙을 지키며 이용해 줘서 훨씬 수월해졌다. 서로 합이 맞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블로거 부캐'로 다시 활동을 했다. 블로그에 스터디 카페 창업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겪었던 막막함을 새로 창업을 시작하는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IT 보안 엔지니어 커플의 스터디 카페 창업 일지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응원과 질문의 댓글들이 달렸고 인터넷 카페에서 칼럼 연재 제의가 오기도 했다. 그리고 창업일지가 더 풍성해질 엄청난 사건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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