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건 괴생물체 같은 벌레를 본 적이 없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였다.
햇살 좋은 5월에 스터디 카페를 개업했다. 봄이 워낙 짧다보니 날은 금방 더워졌고, 공포의 시작은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할 무렵 딱 그때쯤이었다. 비가 오는 아침이라 날씨는 굉장히 꿉꿉했고 아침 청소를 하려고 청소 도구가 있는 창고 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눅눅한 바깥공기에 축 쳐진 앞머리를 털며 걷던 도중 창고 문 앞에 생전 처음 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목 뒤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굉장히 얇고 긴 앞다리. 나도 모르게 소리를 엄청 질렀는데 이용자가 있었으면 다들 불이라도 난 줄 알았을 거다.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충격적인 장면이 보였다. 뛰어오른 것이다. 그것도 내 허리만큼 높게 뛰어올랐다. 그때부터는 혼비 백산이었다. 하얗게 질린 채로 울면서 뛰어나간 후 바로 남자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울먹거리면서 스터디 카페에 이상한 게 뛰어다닌다고 말하자 엄청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뭐가 뛰어다닌다는 거야? 내가 금방 갈게."
멋있게 뛰어 들어온 남자 친구는 팔딱거리는 벌레를 보고 같이 소리만 질렀다. 둘이 땀으로 축축해진 손을 부여잡고 벌레를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뛰어서 스터디 공간으로 나오려고 했다. 남자 친구가 흐느끼며 일단 근처에 있는 큰 상자로 내리쳤다. 더 소름인 건 내려치고 나서 보니 내 옆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팔짝팔짝 문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잠시 후에 남자 친구는 혼이 빠진 듯이 터덜터덜 시체를 쓰레받기에 담아 나왔다. 그 와중에 죽은 시체를 볼 용기가 없어 멀리 도망쳐버렸다. 한참 후에야 미안한 마음과 함께 머쓱하게 스터디 카페로 돌아왔다. 생김새를 검색해보니 곱등이였다. 곱등이는 생전 본 적도 없고 이렇게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불길한 예감이 스치기 시작했다. 검색한 정보에 따르면 추위에도 강하고, 바퀴벌레 약에도 죽지 않으며, 습한 공간을 좋아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창고 방으로 어디선가 기어들어온 것 같았다. 괴담으로는 불에 타도 죽지 않는 강한 생명체라고 했다. 정문을 통해 기어 들어오기에는 가장 안쪽에 있는 창고방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창고 방 문 아래 틈이 있어서 그 틈을 문풍지로 막았다. 창고 방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정문부터 들어오는 것인지 구분을 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 이틀이 지났고 일기 예보에는 또 비 소식이 전해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습한 공기가 무겁게 우리를 짓눌렀다. 곱등이 사건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 마음 놓고 걸어 다니지도 못했다. 한 번은 이곳저곳 둘러보며 걷다가 검은색 지우개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걸 보고 숨이 멎을 뻔하기도 했고,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려나 싶을 무렵 창고 문을 열었는데, 열자마자 위협적으로 나를 보며 서있었다. 마치 이 공간의 주인은 자기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무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데도 고통스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무 징그러워서 똑바로 보고 있기도 힘들었다. 하필 이번에는 남자 친구도 없어서 혼자 해결해야 했다. 일단 바퀴벌레 약을 미친 듯이 뿌렸는데 나를 완전히 무시하며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요즘 시대에도 죽지 않는 벌레가 있다니 너무 무서웠다. 약을 계속 뿌리니 나한테 다가올 거처럼 꿈틀거려서 슬쩍 뒤로 물러났다. 급한 대로 눈에 상자가 보여서 던졌는데 그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상자가 날아가는 그 틈에 상자를 피해 긴 앞다리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창고에 있는 가구 뒤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거기로 들어가면 끝이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함께 살 수는 없었다. 그건 진짜 최악이었다. 이제는 마지막 한 방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숨죽여 가까이 다가간 후에 정확히 보면서 내리쳤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진짜 무언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일단 창고 문 아래를 막고 난 후, 창고 안에서만 발견이 됐다는 건 범위를 창고로 좁힐 수 있었다. 창고 공간은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선들이 천장 쪽으로 지나가는 공용 공간이었다. 우리 스터디 카페에 붙어있으니 건물주 분께서 사용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전선 위에 뭔가 문제의 원인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점프해도 잘 보이지 않아 의자들을 포개서 전선 위를 확인했다. 그래도 잘 보이지 않아 휴대폰을 높이 들어 올려 동영상을 찍은 후에야 전선 위를 볼 수 있었다. 전선이 건물 밖이랑 이어져서 중간중간 공간이 있었다. 이 정도 공간이면 벌레가 들어오고도 남을 것만 같은 크기였다. 보이지도 않는 높은 곳이라 전혀 생각도 못한 원인이었다. 급하게 공사하고 남은 비닐들로 구멍을 막았다. 그렇게 한 동안은 곱등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창고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타닥타닥 타닥. 아무리 봐도 그런 소리가 날만한 게 없었다. 가구들 틈에 벌레가 숨어 있나 했지만 후레시를 비추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창고 안에서 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비닐을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계속 의문이었던 타닥타닥 소리는 곱등이가 비닐을 치는 소리였다. 창고 문을 열 때마다 들렸던 그 소리는 전선 구멍 사이를 막은 비닐을 벌레가 뚫고 들어오려는 소름 끼치는 소리였던 것이다.
언젠가 비닐이 뚫리면 대참사가 나게 될 거 같아서 틈을 메꾸는 다른 방법이 있을지 검색해보았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우레탄 폼이라는 게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가 우레탄 폼까지 쏘게 될 줄은 몰랐다. 작업하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근처 철물점에서 우레탄 폼을 구입했다. 슬쩍 사다리를 빌릴 수 있을지 여쭤보니 젊은 애들이 뭐하고 다니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빌려주셨다. 사다리를 타고 전선 사이사이를 우레탄 폼으로 매웠다. 총을 쏘는 것처럼 조준해서 당기면 슈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슈크림 같은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처음에는 양 조절을 잘 못해서 커다랗게 부푼 우레탄 폼으로 벽과 바닥에 떨어져 난장판이 되었다. 한 통 정도 낭비한 후에야 제대로 된 방법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었다. 그렇게 창고를 완전히 봉쇄했고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창고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있을 때 나타났으면 얼마나 대참사였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무리 징그럽게 생겨도 좋으니 우리 눈에만 보이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문제가 터졌다. 결국 이용자들에게 목격되는 사건들이 생기고 말았다. 세상에 벌레는 다양했고 우리는 벌레와의 전쟁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