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카페를 운영하면서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만, 형사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소에도 자질구레하게 문제가 있기는 했다.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기존 이용자에게 연락이 한 통 왔다. 며칠 전부터 어떤 남자가 구매를 하지 않고 구석 자리를 계속 이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회사에 있을 때는 CCTV를 자주 보기 힘들기도 했고, 이용자가 많은 시험기간도 아니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상습범이었다. 한 시간 이용권을 구매해 놓고 세네 시간씩 이용을 하고 있었다. 입구 비밀번호는 알아야 입장이 가능하니 1500원짜리 가장 저렴한 이용권을 구매한 후 걸릴 때까지 사용하는 거였다. 한두 번 제보를 받고 연락해 보니 처음에는 공부에 집중해서 연장을 깜빡했다고 당황한 척을 했다. 학생처럼 보이기도 하고 경고를 한 후에는 바로 구매를 하길래 그냥 넘어가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러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거의 한 달가량을 야금야금 몇 시간씩 더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무료로 제공하는 음료는 실컷 마시면서 말이다. 주변 좌석에 앉은 이용자들이 계속 제보를 하기도 했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마지막 공지를 했다.
"계속해서 구매 시간을 초과한다면 더 이상 스터디 카페 이용은 불가합니다. 사용할 시간만큼 결제 후 사용 부탁드립니다."
결국 다음 날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스터디 카페에서 야금야금 시간 도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혹시 공부를 너무 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한 건가 싶다가도 어떻게 이런저런 사정을 다 봐주겠나 싶어졌다. 정확한 규칙이 있어야만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니 좀 더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했다.
말하기 애매한 상황들도 참 많았다. 보통 공부할 책을 잔뜩 들고 스터디 카페에 오는데, 가지고 다니는 게 무거운지 여기저기 몰래 놓고 가려했다. 사물함을 구매하지 않고 짐을 놓고 가는 방법은 정말 다양했다. 처음에는 화분 근처나 창틀에서 책과 필통이 발견됐다. 가방에 책들을 한가득 담아 옷걸이에 걸어두기도 했다. '이렇게 두고 가도 괜찮구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봐 여기저기 숨겨진 짐을 챙겨 따로 보관을 해두었다. 다음 날이면 다들 당황해하면서 물건을 찾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보통은 죄송해하면서 사물함을 결제하거나 자리 정리를 잘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사물함 위에 짐을 전부 두고 가는 이용자가 생겼다. 사물함 높이가 높아서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실제로 내 키로는 손을 뻗어서 닿지도 않았고, 위가 보이지도 않는 높이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위치는 CCTV 바로 앞이었다. 무슨 물건을 언제 두고 가는지 아주 잘 보였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위치라 알면서도 그냥 눈 감아 주었다. 그런데 책 한 두권뿐이었던 짐이 점점 늘어났고 커다란 가방도 생겼다. 결정적으로 두고 가는 신발이 세 켤레 정도 되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운동화를 종류별로 놓고 가는 건 진짜 아니지 않나. 점점 본인 자취방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서 안내를 했다. 너무 치졸한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규칙이 없으면 무인 공간 관리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직접 겪어 보면서 하나씩 규칙을 만들었고, 모두를 위한 무인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나가던 초보 사장들은 새로운 사건을 마주했다. 이상하게 공용 물티슈가 하루만 지나도 없어지는 것이다. 200매 물티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각 공간에 놓아둔 물티슈가 싹 사라졌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이용자가 자리에 가져가서 사용하나 싶어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물품은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하지만 안내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날이 되니 내 책들이 전부 사라졌다. 사람들이 쉬면서 읽을 수 있게 놔둔 에세이나 잡지였다.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스터디 카페에 좀도둑이 있구나 확실해졌다. 물건들이 그리 비싼 건 아니었지만 누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괘씸했다. 여기서 또 우리의 엔지니어 직업 정신이 빛을 발했다. 엔지니어는 이슈를 확인하기 위해 시간 별 로그를 분석하는 일이 많다. 로그 분석 경력을 살려 밤새 2주 동안의 CCTV를 미친 듯이 분석하기 시작했다. 모든 시간, 모든 공간을 봐야 하니 눈은 뻘겋게 충혈됐다. 형사에 빙의해서 노트북에 시간과 행동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분석을 마쳤다. 그리고 좀도둑과 전쟁의 서막이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기 전에 잡아 주겠어.'
CCTV를 보다 보니 정말 기가 막혔다. 물티슈 도둑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학생이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와준 덕분에 영상 속에서 확인하기 편했다. 물건을 가져가기 전에는 꼭 CCTV를 3초 정도 빤히 보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심리인지 뻔뻔하게 화면을 바라봤다. 그 올려다보는 눈 빛을 여러 번 봤더니 꿈에서도 나올 것 같았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핀 이후에 물티슈를 옷 속에 숨겨서 자리로 이동했다. 배에 숨긴 후 양손으로 받치느라 뒤뚱뒤뚱 누가 봐도 수상한 걸음 걸이었다. 매일같이 입고 온 줄무늬 티셔츠는 몇 번씩이나 물건을 훔치느라 너덜너덜 늘어난 듯 보였다. 자리로 돌아와서는 재빠르게 까만 백팩 속으로 집어넣었다. 물티슈를 왜 그렇게까지 가져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책들도 두 세권 씩 가방에 넣은 모습이 찍혔다. 나중에는 그냥 눈치도 안 보고 통으로 가방에 넣어갔다. 스터디존, 카페존, 야외존까지 여기저기 잘도 다녔다. 외부에서 들어올 때도 배 속에 불룩하게 뭔가 담아 오는 걸 보니 근처 편의점에서도 물건을 훔치지 않았을까 싶다. 참 기가 막힌 건 그렇게 한두 개씩 물건을 가방에 넣고 나면 세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공부를 했다. 인터넷 강의도 듣고 필기도 하고 이 모습만 보면 마치 전교 1등이 공부하는 것처럼 가만히 공부만 했다. 물론 이용권도 제대로 구매하고 말이다.
하지만 점점 도를 넘기 시작했다. 모든 카메라마다 얼굴 도장을 찍으며 사각지대를 확인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용자의 물건도 가져가려는 건지 짐만 남겨진 책상을 엄청 쳐다보며 다녔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살피고 다니는 모습이 기가 막혔다. 하지만 9개의 카메라가 있어서 보이지 않는 구역은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이용자의 샤프를 훔치는 모습도 담겼다. 비록 티가 잘 나지 않는 물건들이긴 했지만, 작은 물건을 시작으로 큰 물건도 손을 댈까 봐 걱정됐다. 심지어 엄마로 보이는 사람을 아침마다 데리고 들어왔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자분은 자연스럽게 커피 머신에서 모닝커피를 한 잔 내려 천천히 음미했다. 비밀번호를 공유한 건지 다른 남자분도 자연스럽게 들어와 같이 스터디 카페를 돌아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다. 본인들끼리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기도 하고 귓속말도 하는 모습까지 보여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모든 걸 확인한 후 고민에 빠졌다. 가격도 얼마 되지 않는 물티슈와 책 도난으로 신고를 해도 되는 걸까. 대체 스터디 카페에 좋은 게 뭐가 있다고 이러는 걸까 싶었다.
둘 다 좀도둑에 대해 걱정이 된 건 맞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의견은 조금 달랐다. 나는 일단 그리 섬세한 성격은 아니다. 사이즈를 잘못 산 옷을 환불 과정이 귀찮아서 그냥 입는다거나, 상세정보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구매한 물건의 크기가 맞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귀에서 뺀 에어팟을 케이스에 넣기 귀찮아 주머니에 넣어놨다가 그대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에 반해 남자 친구는 회사에서 봐왔던 일을 잘하는 모습보다 훨씬 더 꼼꼼했다. 설명서는 외울 듯이 몇 번이고 다시 봤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유튜브 영상 후기를 수십 개씩 확인하는 성격이었다. 내가 덜렁대면서 잘못 구매한 물건들을 처리해 주는 담당도 했다.
"물티슈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는 건 너무 시간만 아까울 거 같아. 신고할 때도 괜히 머쓱하기도 하잖아. 나는 블랙리스트 처리하고 그냥 이용만 못하게 하고 싶어."
"CCTV를 봐서 알겠지만, 행동이 점점 더 대범 해지잖아. 마음먹고 다른 휴대폰으로 가입하면 충분히 다시 들어올 수도 있어. 게다가 우리는 안내문도 여러 번 남겼는데 전혀 개의치 않잖아. 이건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신고하는 게 맞아."
여러 대화를 나눈 끝에 신고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느 순간 스터디 카페의 노트북이나 이용자의 귀중품이 없어지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를 찾았다.
마음 굳게 먹고 동네에 있는 파출소 같은 곳에 문을 두드렸다. 푸근한 인상의 경찰관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원래 행동부터 하는 성격이라 무작정 경찰서처럼 생긴 곳 문부터 두드렸는데, 그곳은 동네 치안 센터였다. 지역 주민의 민원 상담을 하는 곳이라고 알려주셨다. 그것도 모르고 문을 열고 경찰관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 상황만 잔뜩 혼자서 늘어놓았다. 조금은 머쓱하게 도난 사건을 신고하는 방법을 배웠고, 친절한 경찰관님께서 힘내라며 잘 익은 밤 10알 정도를 주셨다. 알고 보니 도난 사건은 접수가 되면 경찰이 현장을 살펴봐야 해서 출동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112에 전화하면 된다고 한다. 나름 배려한답시고 경찰관들도 바쁘실 테니까 내가 찾아가려 했는데 정해진 절차가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 키패드의 112를 누르고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 버튼을 눌렀다. 괜스레 긴장이 되어 애꿎은 주머니 속 밤만 계속 만지작만지작거렸다.
"운영하는 스터디 카페에 좀도둑이 있어서 신고하려고 합니다."
"바로 현장으로 출동하겠습니다. 주소만 말씀해 주세요."
전화 접수가 완료되자마자 바로 출동 경찰관 개인 휴대폰 번호로 문자가 왔다. 경찰서 위치와 도착 예상 시간이 적혀있었고, 무슨 일이 있을 경우 바로 경찰관 휴대폰 번호로 연락하면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문자 하나만으로 굉장히 든든해졌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경찰차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