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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Mar 11. 2022

[Lv.14] 스터디 카페 도둑을 경찰에 신고하다.

 스터디 카페 앞에 경찰차가 떡하니 서있으니 주변 주민분들이 웅성웅성거렸다. 좁은 골목길에 주차된 경찰차는 골목을 가득 채울 만큼 컸고,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별 일 아니라고 물티슈 도둑이니 걱정 말라고 외치고 싶었다. 잠시 후 경찰관 두 명이 차에서 내렸고 조사서와 펜을 들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정확한 상황을 먼저 설명해 주시겠어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뚝뚝해 보이는 경찰관에게 설명하는 것도 긴장되었고, 고작 물티슈 도둑이라고 말하려니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말하기 어려웠다. 사실 이런 작은 일로 신고를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예전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쯤 동생이 납치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처음 겪는 일에 사색이 되어 범인이 요구하는 1000만 원 정도를 바로 입금했다. 돈을 보내자 범인은 뻔뻔하게 추가로 1000만 원을 더 요구했다. 그러다 보니 돈을 구하는 동안 범인과 통화가 더 길어졌다. 그 사이에 정말 다행히도 동생이 해맑게 웃으며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뻔한 보이스피싱이었지만, 아이 우는 목소리가 들리고 이름도 알고 있으니 모두 속고 말았다.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는데 집으로 찾아온 경찰관이 처음 한 말은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들어도 기가 막혔다.


 "아니, 요즘도 보이스피싱 속는 사람이 있나요?"


 경찰 아저씨는 초등학생 시절 멋진 영웅이나 마찬가지었는데, 동생을 끌어안고 우는 엄마와 무심하게 상황을 적는 경찰관을 번갈아보며 영웅에게 배신감을 느낀 날이기도 했다. 걱정과 달리 물티슈 도난 사건으로 출동하신 경찰관은 물티슈 사건도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조사서에 내용을 쓸 때도 하나하나 도와주셨다. 모든 내용을 꼼꼼하게 작성하고 엄지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서명란에 찍음으로써 조사서 제출이 끝났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여쭤봤더니 스터디 카페 이용 내역에 인적사항이 다 남았기 때문에 바로 소환해서 조사 예정이라고 했다. 방문한 경찰분들이 계속 진행을 하는 건 아니었고 형사님이 배정되었다. 


 몇 시간 후 증거를 확인하러 형사님이 방문하셨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형사님을 보다니 긴장 반 신기함 반이었다. 짧은 머리와 진한 인상, 단단한 체격까지 보기만 해도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강풀 작가님 웹툰 중 '타이밍'에 나오는 형사님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눈빛이 나를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범인들이 저 눈 빛만 봐도 죄를 다 불어버릴 거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적 사항과 CCTV 증거 영상이 있으니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알려주셨다. 영상 녹화본을 드리려는데 CCTV를 볼 줄만 알았지 서버에서 어떻게 저장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리바리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형사님께서 자연스럽게 기기에서 영상을 추출하는 옵션을 설정하셨다. CCTV 영상을 수집하는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니 제품 별로 사용법을 모두 꿰고 있다고 하셨다. '역시 형사님은 형사님이구나.' 존경스러운 눈 빛으로 작업 과정을 지켜봤다. 그런데 가져오신 USB에 일주일 정도의 영상을 복사하기에 용량이 너무 컸다. 이 속도로는 복사만 하루 이상 걸릴 거 같았다. 시간 별로 정리해 둔 자료와 저장해 둔 캡처본을 슬쩍 보여드렸다. 이렇게 정리해서 준 사람은 처음이라고 형사 해도 되겠다며 엄청 놀라셨다. TMI 긴 하지만 직업이 IT엔지니어라 분석할 일이 많다고 얘기해 드렸다. 회사에서 업무로 로그 분석할 때는 이렇게 뿌듯해본 적이 없는데, 물티슈 도둑 검거를 위한 분석 내용을 전달했을 때는 성취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휴대폰 진동이 지잉지잉 울려서 보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사람의 직감이라는 게 참 무섭게 잘 맞을 때가 있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마음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스터디 카페 맞나요? 물건 좀 두려는데요."


 당연히 물티슈를 훔쳐간 도둑일 줄 알았는데, 일반 사용자인 것 같아서 긴장이 탁 풀렸다. 괜히 혼자 화난 목소리로 받을지, 무뚝뚝하게 받을지 고민하며 전화를 받은 게 조금 머쓱했다. 사물함이 스터디 카페 내부에 있다 보니 간혹 사물함만 이용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묻는 경우가 있었다. 물건을 두고 간다고 하길래 당연히 기존처럼 응대를 했다.


 "물건 두신다는 게 사물함 이용 맞으실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뻔뻔했다.


 "아니요. 제가 스터디 카페 물건을 가져온 게 있는데 경찰에서 연락을 받아서 다시 두려고요."


 '내가 뭔가 잘못들은 건가?' 싶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나한테 빌린 물건을 돌려준다는 것 같은 말투였다. 예상 밖의 상황이라 뇌가 정지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길을 걷다 벙찐 채로 휴대폰을 붙들고 멈춰있으니 같이 있던 회사 동료가 무슨 일이냐며 놀라서 물어볼 정도였다. 도둑한테 연락이 온다면 진심은 아니더라도 사과를 먼저 할 줄 알았다. 물건을 돌려주면서 사과한다면,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이용만 제한할 생각이었다. 단가가 낮은 물티슈와 책 정도였고, 아직 학생이니 경찰서에 불려 가서 혼나고 나면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푹 쉬고 나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 물건을 빌려가신 게 아니라 허락 없이 제 물건을 가져간 거잖아요? 가져가지 말아 달라고 공지까지 적어서 뒀는데 그걸 보고도 일주일 넘게 지속적으로 가져가더라고요. 스터디 카페 내부에는 CCTV가 곳곳에 있어서 누가 훔쳤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했지만, 경고하면 더 이상 그러지 않겠지 하고 넘어가 준 거예요. 경찰 연락까지 받고 저한테 전화를 하셨으면, 물건을 돌려준다는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 맞는 상황이에요. 작은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면 도둑질이에요."


 "아. 네. 죄송해요."


 이게 끝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진심 없는 사과가 있을까. 죄송하다는 말에서 죄송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반항기 어린 삐딱한 말투는 아니었다. 정말 문제가 뭔지 모르는 어린애가 사과하라고 하니까 사과만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애초에 물건을 돌려준다고 한 것도 왠지 엄마가 다시 놓고 오라고 하니 그냥 전화해서 가져다준다고 한 것 같았다. CCTV 화면상으로는 고등학생 정도 돼 보였는데 대체 뭐지 싶었다. 고등학생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경찰관에게 연락을 받았으니 겁먹고 사과를 하던지, 아니면 발뺌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물티슈 도둑의 심리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더 이야기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우선 전화를 끊었다. 끊자마자 갑자기 1분 간격으로 계속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스터디 카페가 10시 운영 제한이 있었다. 남자 친구가 멀리 출장을 간 상태라 혼자 마감 청소를 해야 했는데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엄마가 계속 전화를 걸어 보라고 했나?', '내가 뭐라고 했다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서 이러는 건가?', '이번에는 제대로 사과를 하려는 건가?'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전화를 다시 받기가 망설여졌다. 흉흉한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보니 불안한 생각만 자꾸 들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형사님께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형사님, 저희가 신고한 학생한테 물건을 돌려주러 오겠다며 전화가 계속 와서요. 지금은 혼자 있는 상황이라 직접 만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데, 신고 접수 후에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일단 도난 신고 접수 후 원하지 않는다면 따로 대면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물품은 저희가 모두 수거할 거고요. 재판이 끝나면 신고자 분께 경찰서에서 직접 돌려드릴 예정입니다. 연락을 하고 싶지 않으시면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많이 어린 학생이더라고요. 나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고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점만 참고해 주세요."


 그럼 만 나이로 고작 초등학생이라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훨씬 나이가 어려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대체 지금까지의 행동이 무슨 심리인지 궁금했는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어린 학생이었던 것이었다. 일단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이를 시켜서가 아닌 보호자께서 직접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도둑질에 대해서 정상적으로 지도하는 부모이길 바랐다. 무단으로 들어와 모닝커피를 마시는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때까진 보호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사건이 종료되었다는 통지서를 받을 때까지 아이 보호자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중간중간 형사님께 따로 연락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법적 처벌에 따라 교육 이수만 받고 있다고 전해주셨다. 보통 나이와 상황에 따라 처벌 정도가 달라지다 보니 교육 이수에 그친 것 같았다. 어떻게 부모라는 사람들이 아이의 도둑질에 대해 별다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올바르게 지도하기는커녕 아이를 앞세워서 물건만 돌려주라고 하는 상황이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이대로 마무리하기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가 비용 지불 없이 무단으로 스터디 카페 시설을 이용한 부분도 처벌이 가능한지 여쭤보았다. 무단출입은 도난과는 별개의 건이고 민사로 소송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게다가 무단출입에 대한 피해가 크지 않아 처벌은 어려울 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음은 불편한데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없는 점이 참 속상했다.


 예전에 아빠가 운영하는 가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초등학생이 킨더 조이 초콜릿을 계속 훔쳐가는 일이었다. 도둑질은 일주일 정도 이어졌고 주머니에 넣는 순간을 발견해서 바로 말을 걸었다.


 "방금 주머니에 넣은 초콜릿 계산한 거니?"


 아이는 잔뜩 겁을 먹은 채 초콜릿을 가져간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말과는 다르게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곧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둑질은 하면 안 되는 거야. 아저씨가 며칠 전부터 지켜봤고 거짓말까지 하니 부모님과 이야기해야겠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학생이라서 부모님을 불렀다. 아이 엄마, 아빠 모두 가게 앞 초등학교의 선생님이었다. 전화를 하자마자 실내용 슬리퍼를 그대로 신은 채 급하게 달려왔다. 상황을 전해 듣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에게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무슨 이유였던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도둑질이고 범죄라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쳤다. 아이와 함께 사과를 하며 지금까지 가져간 과자의 값도 전부 배상했다. 그 후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엄마한테 왜 그랬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친구들은 매일 킨더 조이 초콜릿을 학교에 들고 와서 먹었어요. 다들 초콜릿 속에 들어있는 장난감을 모으고 자랑했어요. 엄마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못 먹게 해서 너무너무 먹어보고 싶었어요. 도둑질 한 건 정말 잘못했어요."


"엄마가 우리 아들 건강 생각한다면서 정작 마음은 몰라줘서 미안해.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고 엄마도 앞으로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지 않을게."


 몸집이 통통한 아이였는데, 건강에 좋지 않을까 봐 군것질을 못하게 해서 몰래라도 먹고 싶었던 것 같았다. 도둑질을 계속해도 걸리지 않다 보니 한 번이 두 번이 되었고, 멈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사실은 매일 마음 졸이고 무서웠다며 엉엉 울었다. 부모님도 같이 울면서 계속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층 더 성장한 가족이 될 것 같았다.


 이제 인생을 배워가는 어린아이가 한 번쯤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어떻게 아이들이 단 한 번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친구와 싸우지도 않고, 바른말만 하는 도덕책에 나오는 사람처럼 크겠는가. 하지만 그 후 교육에 따라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결말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어리숙한 초보 사장이 아니었다면 다른 결말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도 바쁜 직장인인데 뭘 더할 수 있지?'라는 생각까지 마음이 복잡했다. 항상 정답인 행동만 하고 싶은데 현실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일상에서, 사업에서 참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마무리된 후에도 마음 한편이 참 찜찜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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