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사장님', '블로거' 부캐 중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나는 건 아무래도 '직장인 나'다. 주 5일 동안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물론 야근까지 하는 날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가족 보다도, 잠자는 시간보다도 많은 시간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낸다. 주말까지 함께할 정도로 좋은 사람도 많지만, 또라이 보존 법칙이라고 별로인 사람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든, 사업에서든 사람 때문에 힘든 이유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대놓고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도 싫은 티를 잘 못 내는 성격인 데다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상사에게 밉보여서 직장 생활이 힘들어지진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혼자 꾹 참고 넘기곤 했다.
첫 직장 때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더 조심스러웠다. 스물셋.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병아리 같은 신입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매던 스포츠 브랜드 백팩에 공책, 필통, 노트북을 넣어 씩씩하게 출근을 했다. 공대생은 튼튼하고 커다란 가방 하나쯤 다들 가지고 있으니까. 학생 때는 벽돌만 한 두께의 전공책들을 들고 다니려면 투박한 백팩이 학교 생활필수품이었다.
"그 가방 되게 좋아하는 건가 봐요?"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서 자주 쓰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쓰던 거라 정들었나 봐요."
"아 그래요? 여성분들 예쁜 핸드백 좋아하잖아요. 저는 와이프 명품백 진열장 만들어줬거든요."
머릿속에 '누가 물어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직장 선배니까 아내분이 참 좋아하셨겠다고 하고 넘어갔다. 리액션은 또 끝내주게 잘하는 편이라 좋게 반응해 줬더니 그게 문제였나 보다. 아내한테 사준 명품 구두, 가방, 모자 브랜드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걸어왔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때는 명품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내가 아는 건 누구나 아는 명품인 샤넬, 구찌 정도였다. 하지만 그 선배는 일방적으로 모르는 명품 브랜드에 대해 쏟아냈다. 그 브랜드의 장점, 이번 신상이 어떤지 까지 듣고 있으니 재미도 없고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그 선배는 이십 대 후반이었고 아기가 생겨서 일찍 결혼을 한 편이었다. 다정한 남편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은 건지, 나이는 어려도 이 정도 능력은 된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건지 이유가 뭐였든 그냥 궁금하지가 않았다. 그러더니 자랑과 무시 그 사이에서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다. 하루는 새로 산 갈색 가방을 메고 출근을 했다. 좋은 브랜드의 가방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쏙 들어서 자주 매던 가죽 가방이었다.
"오! 루이비통 가방 사셨어요? 아, 아니구나."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내 가방을 쳐다봤다. 그 말을 듣는데 괜히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시간이 끝없이 길게 느껴졌고 문이 열리면 저 멀리 뛰쳐나가버리고 싶었다. 루이비통은 스쳐 지나가다 봐도 '저는 루이비통이에요.' 하지 않나? 내 건 무늬가 없는 진한 갈색 가방이었다. 게다가 이전부터 선배의 자랑뿐인 대화를 끊기 위해 사회 초년생이라 명품은 잘 모른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었다. 이쯤 되면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령 그 사람은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듣는 나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제가 매고 있으니 명품 같아 보이냐고 웃고 넘겼지만 이런 대화는 몇 번이나 반복됐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선배의 의자 돌아가는 소리만 나도 나에게 말을 걸까 봐 자리를 피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화장실을 가거나 괜히 일에 몰두한 척을 했다.
그렇게 선배에 대한 싫은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쌓이면 펑하고 터져버릴 거 같았다. 최악의 마지막 사건은 회사 직원 분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발생했다. 그때 당시에 첫 입사를 축하한다며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지갑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30만 원 정도 했던 검은색 가죽 장지갑이었다. 20대 초반에게 꽤 인기가 있는 브랜드였고 내가 어떤 디자인을 좋아할지 섬세하게 고민하며 직접 골라주셨다.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A 브랜드라고 하겠다.
"아내 생일 선물하려는데 여자분들 요즘 어떤 거 좋아해요? 지갑을 선물할까 하거든요. "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말을 이어갔다.
"근데 요즘 A브랜드 같은 건 잘 안 사잖아요. 확실히 돈 조금 더 주고 명품 선물하는 게 낫더라고요. 상품 퀄리티가 완전히 달라요."
대답도 못하고 벙쪄있었다. 하필 직원들이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라 뭐라고 얘기하기도 애매했다.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그 선배는 내 지갑이 어떤 건지 몰랐을 수 있다. 그냥 본인의 취향을 말했던 걸 수도 있지만, 지갑 주인이 듣기엔 너무 속상했다. 굳이 A브랜드만 콕 찝은 것도 너무 이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가장 화가 나는 건 그 뒤로 지갑을 한 번도 꺼내지 못한 바보 같은 내 모습이었다. 스물세 살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여렸고 상처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사주신 지갑을 가방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 당장 월세 내기도 버거우면서 명품 지갑은 얼마 정도면 살 수 있나 찾아보곤 했었다. 명품 판매 사이트에 접속해서 바로 낮은 가격순으로 정렬부터 해서 보았다. 낮은 가격 정렬임에도 백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을 보고 내 월급으로는 택도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뭔가에 씐 것처럼 '신용카드 할부로 사볼까? 기왕 사는 거 차라리 명품백을 살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대체 이게 누굴 위한 명품백이지? 그렇게 명품 사이트를 닫아버렸다.
내가 행복해지는 곳에 돈을 쓰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모았던 100만 원은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엄마에게 베트남 여행을 선물했다.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소녀처럼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에 괜스레 찡했다. 그다음에 모은 100만 원은 돈 아낀다며 임플란트를 받지 않고 버티던 아빠에게 선물했다. 마지막 목돈은 8살 어린 동생의 대학교 첫 등록금을 내주었다. 관심도 없던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백 배는 더 뿌듯했다. 그게 내 행복이었다.
명품을 구매하는 것을 마치 사치 부리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단지 '남'을 위한 명품이 아닌 '나'를 위한 명품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이 되었으니 명품백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나?'라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이 성장했다 느껴질 때 스스로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낮은 가격순이 아닌 좋아하는 디자인의 가방을 골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주고 싶다. 물론 가끔씩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사람인지라 조급한 마음이 들곤 한다.
"이제 곧 서른인데 명품백 하나는 있어야지. 결혼식에는 이제 좀 갖춰서 들고 가야 하는 거야."
그래도 나는 이제 예전처럼 가방 한구석에 지갑을 숨기지 않는다. 대신 장난스러운 허세를 가득 담아 이렇게 말한다.
"곧 나한테 일시불로 선물해 줄 거야. 가격 안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