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12월 30일. 2024년을 코앞에 두고 친정식구들이 모였다. 1월 10일이 아빠생신인데, 도저히 모든 가족들의 일정을 맞출 수 없어서였다. 온 가족이 모이면 여자 8명, 남자 10명으로 총인원이 18명이다.
어렸을 적 집은 그대로인데, 인원수만 그 배로 늘어서 다 모이면 집이 좁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답답해 보인다. 방은 4개지만 그중 방하나는 올해 키울 고구마 모종을 넣어 둔 상태라 딱 한 명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공간밖에 없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코를 가장 심하게 고는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겨울이면 어김없이 혼자 고구마와 함께 잠을 잔다.
18명이 모이면 조심해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진다. 매해 발생하는 똑같은 문제는 화장실에서 비롯된다. 18명이 쓸 수 있는 화장실은 불행스럽게도 단 하나이다. 밥을 먹고 이를 닦으려면 순서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고, 샤워를 할 때는 공중목욕탕에 온 느낌이 든다.
여름휴가 때는 변기가 막히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용변을 보고 휴지를 변기에 버리는 화장실 사용에 익숙한 꼬맹이들이 시골집에 와서도 그렇게 한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고무장갑을 낀 채 화장실로 투입되었다. 화장실에 있는 뚫어뻥은 사용한 지 오래되어서 고무가 낡아 압력이 들어가지 못했다.
변기물을 내릴수록 넘쳐흐르는 처참한 광경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도저히 있는 도구로는 불가능해서 제부는 신식(?) 장비를 사 왔다. 또다시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시도를 했지만 상황만 악화될 뿐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포기하고 나오자, 화장실을 어디로 갈지, 공중화장실은 너무 멀리 있으니 차라리 각자의 집에 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우리가 가더라도 엄마, 아빠가 화장실을 쓰셔야 하니, 무조건 막힌 변기를 뚫고는 가야만 했다.
“제가 유튜브 찾아봤는데요. 변기용 둥근 솔이랑 비닐봉지 하나만 주세요.”
마지막으로 남편이 해보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무도 성공할 거라는 기대를 1도 하지 않았다. 퍽퍽퍽 소리가 들리더니 변기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문을 열고 남편이 걸어 나왔다.
“성공했어요.”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17명은 환호성을 질렀다. 온 가족이 박수를 치며 ‘김 00’(우리 신랑 이름)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한일전 응원보다 더 큰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남편은 끝나지 않는 박수 소리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남편의 크나큰 업적으로 인해 각 집의 아이들이 변기를 막히게 하면 형부, 제부가 전수를 받고 화장실로 입장한다.
이번에는 형부차례였다.
집이 좁아도, 화장실이 하나여도, 잠자리가 불편해도, 양치할 때 줄을 길게 서도, 여름에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시원하지 않아도, 모이기만 하면 웃기 바쁜 우리 18명. 이번에도 역시나 엄청 웃다가 왔다. 또 가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