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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Dec 10. 2024

꽃상여가 지나간다.- 8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 방학. 할머니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고, 내가 병간호를 해야했다. 첫째 언니는 대학원 공부로 바빴고, 둘째 언니는 취업중이었고, 여동생과 남동생은 중고등학생이었다. 나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병실에서 먹고 자면서 할머니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할머니는 이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평생 아끼느라 버려지는 천으로 고무줄을 넣어 속옷을 만들어 입으셨던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기저귀를 차셨다. 병원 첫날은 할머니가 불쌍해서 보기만 해도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할머니는 목구멍으로 일반식을 넘길 수 없어서 죽을 먹다가 결국에는 미음을 드셔야만 했다.  

      

할머니 바로 옆에는 치매로 정신을 잃으신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할머니 침대 옆이라 내가 잠을 자는 간이침대와 거리가 가까웠다. 간이 침대에 앉아 있으면 그 할머니는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꼬셨다. 할머니를 간호하시는 분은 할아버지셨다. 오랜 병간호에 지친 할아버지는 누가 환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누워서 지내는 부인이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돌려주는 것조차 할아버지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할머니의 욕창은 갈수록 심해졌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까지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냄새가 늘 풍겼다. 할아버지는 기저귀를 가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할아버지의 사정을 아는 간호사들 조차도 똥이 가득 뭍어 있는 기저귀를 갈 때면 불쾌한 기색이 얼굴에 드러났다. 병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보고 나이 먹어서는 병간호 못하다며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내게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칭찬을 쏟아냈다.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할머니가 있던 병실에는 혼자서 몸을 가누기 어려운 나이든 분만 있었다. 할머니의 식사를 챙기고, 내 밥을 먹으려 하면 어디선가 똥냄새가 풍겨왔다. 먹는 게 시원찮은 할머니 조차도 기저귀에 대변을 보실 때면 숨을 참아야만 했다. 소변줄을 통해서 나온 소변을 버리고,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여드리는 일들이 점점 더 힘겹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먹고, 쉬고, 자고 하는 것들은 아무리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불편함이 가득했다. 할머니가 나에게 수많은 좋은 추억들을 주었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할머니였지만, 병원에서의 보내는 날이 더해질수록 내 안에 이상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는 할머니가 맞을까?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멍한 시선만 던지는 사람은 할머니가 맞을까? 언제까지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지?’     


바쁜 일이 끝나고 부모님이 오시면 내심 교대해 주기를 바랐다. 나 이외에는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나중에는 억울함마저 들었다. 식사를 챙겨드릴 때 곧잘 말을 걸었던 나는 점점 말도 잃어갔다. 나 자신이 무서웠다. 분명 할머니가 아파서 큰 수술을 받을 때 엉엉 울었던 나인데,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는 반응 없는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나에게 짐처럼 느껴졌다. 

     

이런 마음을 품는 나 자신이 인간같지 않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지쳐가는 날들이었다. 병원에서 머무르는 하루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숨이 막혀왔다. 애틋했던 할머니인데 커다랗고 쭈글쭈글한 아기가 되어버린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스무살 나에게 버거웠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날. 시원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할머니를 병간호하느라 고생했다고 칭찬이 쏟아지는 날. 나는 허파가 다시 숨쉬는 기분이었다. 병실로 다시 돌아가지도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했다.

     

침대에 누워만 있는 할머니를 정신없이 떠난 날, 그 날은 할머니와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은 날, 병실에서 할머니에게 느꼈던 나의 감정들이 제일먼저 떠올랐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보다 내가 할머니에게 품었던 감정들이 나를 슬프게했다. 할머니께 하지 못했던 말들이 입안을 터질 듯 뱅글뱅글 돌아서 가득찼다.      


첫날과 비슷하게 둘째 날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남아 있는 사람들 얼굴에서 조금씩 할머니가 쥐여 준 슬픔의 농도가 옅어지는 게 보였다.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에서 힘이 빠졌다.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첫날과 달리 둘째 날은 술술은 아니더라도 물 없이 밥을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낮은 정신없이 육체를 혹사하고, 밤은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할머니가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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