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_감정 통제
"기분 전환을 위해 가끔 쉬면서 단순하고도 건강한 일상을 꾸려나갈 때 크게 발전한다. 꾸준하고 착실하게 흐름을 타면서 생산성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질투, 낙심, 분노는 글이 흘러나오는 샘을 오염시킬 뿐이다."
(도러시아 브랜디)
글쓰기 작업은 감정을 많이 소모합니다. 특히 보도자료를 쓸 때는 자기 조직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을 담아야 하므로 감정 소모가 지나친 경우가 많습니다. <신념>은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신념>을 담은 글은 아무래도 긍정적인 내용일 가능성이 높지요.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사람이 긍정적인 글을 쓰기는 어렵겠지요. 나는 글을 쓰기 전에 가급적 긍정적인 정신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소설을 읽더라도 암울한 느낌이 나는 것은 피합니다. 그런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습니다만 그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은 아닙니다. 근대 소설가들의 작품 가운데는 세기말의 암울한 느낌이 묻어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무기력한 청춘을 살아간 안타까운 작가들이죠. 그분들의 작품에서는 그런 부정적 감정이 느껴집니다.
중학교 때 김동인의 소설 『광염 소나타』를 읽었습니다. 극단적인 유미주의, 예술주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듣는 작품이지만 그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우울한 감정이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소설은 줄거리와 함께 몇 구절이 또렷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아마도 그런 감정을 ‘감동’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것 같습니다. 김동인의 소설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소설은 분명히 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밝은 감정을 유지하게 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같은 소설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도움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글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도 기계적으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그런 글을 읽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요리사가 재료 하나하나의 풍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듯, 좋은 작가는 단어 하나하나의 느낌을 세밀한 감수성을 가지고 검토하면서 문장 속에 배열합니다. 자기 목적에 적합한 단어를 골라내는 것은 물론 독자가 문장을 읽을 때 순간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지를 단어 단위에서 계산하는 것이죠. 이런 작업을 우울한 감정으로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는 늘 좋은 감수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감수성은 상당히 예민한 것이어서 부정적 감정의 영향을 쉽게 받기 때문에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죠. 어두운 감정은 집필 활동을 저해할 뿐 아니라 작가가 자기만의 감정에 매몰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정밀한 글은 단숨에 나오지 않습니다. 가능한 여러 문장 가운데 하나를 많은 고려를 거쳐 선택해야 합니다. 보도자료는 두 페이지 내외로 짧고 단순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정적 감정은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적극적 행동에 방해가 됩니다. 진부한 표현을 피해야 하는 글쓰기에서는 지면으로 글이 옮겨지기 전에 반드시 작가의 내면에서 여러 건의 대안적인 문장을 썼다가 지우는 실험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요. 부정적인 감정은 그 자체로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작가는 내면적 문장 실험에 투입할 여분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글을 쓰기 어렵다면 당장에 산책이라도 나가세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작가는 자신의 글에 쉽게 몰입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