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현에는 <보리의 집 (麦の家)>이라는 곳이 있어요. 자급자족하는 걸로 유명한 집이라고 동네 분이 같이 데려가 주시더라고요.
이 집은 오오츠라는 곳에 있었어요. 장난감처럼 작은 2량짜리 전철을 타고 갔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작은 무인역이었어요. 보리의 집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있더라고요. 사람 손이 닿은 듯 안 닿은듯 정비된 길 옆 ‘멧돼지 주의’라는 푯말을 따라 가니 엄청 큰 전통 가옥이 나왔어요. 지은지 100면이 넘은 곳이래요. 그곳이 보리의 집이었어요.
“몸빼아줌마 집에 머물고 있다고~? 맛있는 거 많이 먹겠구먼!”
집주인은 타카시 라는 분이었어요. 몸빼아줌마는 아케미 아주머니의 별명이고요. 네 맞아요, 맛있는거 엄청 먹고 있다고 했어요. 이름을 알아듣는다는건 동네에서 꽤 유명하다는거겠죠? 역시 아케미 아주머니, 보통분이 아니셨군요.
아무튼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아저씨는 ‘얼마 전에도 한국사람들이 견학을 왔다’며 방명록을 보여줬어요. 한국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가 보이더라고요. 자급자족과 관련해서 여러곳에서 배우러 온다네요. 와, 제가 그런 집에 놀러온거였군요?! 어쩐지, 방문객을 대하는 매너가 느긋하시더라고요.
타카시 씨는 자급자족과 관련한 책을 내서 유명한 분이었어요. 하지만 농가 출신은 아니었어요. 처음 농사를 배운 건 이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오면서였다네요. 그 전에는 공무원이었대요. 쉽지 않았을것 같은데, 역시 사랑의 힘일까요...?
집이 꼭 옛날 일본 만화에 나올것 같이 신기했어요. 방 한가운데에 화로가 있더라고요. 이 곳에 3대가 같이 산대요. 집 주위 텃밭엔 타카시씨 가족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고구마, 연근, 고추 등이 보기 좋게 자라고 있었고요. 그런데 정말 자급자족이 되는걸까요? 그래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엔 화폐가 필요한데, 농사만으로 가능한건가요? 그 정도로 돈을 벌려면 미국처럼 어머어마한 규모의 농사를 지어야 하는게 아닌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랬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어요. 뽕나무로 누에를 키워서 실을 짜서 기모노 천을 만든대요. 이걸 백화점이나 기모노 가게에 판매한다 고 하더라고요.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질이 좋은 천을 만드나봐요. 일본 백화점에 가 보니 기모노 값이 상당히 비싸던데. 여기에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유명한 곳이니 이런 스토리도 판매에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자급자족이라고 해서 농사만 짓는 집을 생각하고 왔는데, 뒤에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네요. 역시, 괜히 전 세계에서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었군요.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타카시 씨가 밭에서 고추를 몇 개 따주셨어요. “한국 고추에 비하면 성에 안차겠지만, 그래도 매운 걸 선물로 주마.” 라면서요. 네 아저씨, 별로 안 매웠어요. 하지만 보리의 집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특별한 맛이 나는것 같았어요. 좋은 기념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