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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Jan 01. 2021

휴대폰에 종속된 행복

선택과 공감

구글에서 "스마트폰과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할 때 "스마트폰, SNS에 몰입하면 공감능력 떨어져"라는 제목의 글들이 빼곡하게 올라온다. 


이런 키워드를 검색한 이유는 지난 주말, 휴대폰 속 전자도서관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저널리스트 Kaitlin Ugolik Phillips(케이틀린 유골릭 필립스)의 저서 The feeling of future(감정의 미래)라는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SNS 앱을 통한 소통과 공감의 문제를 다룬 예측 가능한 내용들이었지만 글을 읽어가다가, 문득, "기술은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라는 생각에 잠시 몰입했었다. 인간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인간을 종속시키며, 인간은 스스로 기술에 종속되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익숙해져 오래되면 삶의 패턴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SNS에서의 교류를 익숙하게 여기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휴대폰을 SNS를 통한 소통의 목적보다 "Home automation", "음악감상실", "도서관", "은행, 주식거래 창구", "지식 전달자", "사진 미디어 제작소", "스케줄 비서", "세무서".. 등등으로 활용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아침 기상시간에 내 방의 티브이가 켜지고 나면, 휴대폰에 연결된 구글 네스트에 날씨를 묻거나 오늘의 환율과 주식시황을 요청한다. 생활에 필요한 알람을 설정하고 뭐든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저 편하게 물어볼 수 있고 휴대폰에 연결된 네스트는 지식의 제공자로서 성심성의껏 대답해준다. 어떤 기기를 켜달라고 하거나 끄라고 명령하면 불평 없이 기꺼이 수행한다. 해가지면 내가 휴대폰에 설정한 시간에 맞추어 불이 켜지고, 내가 정한 날짜에 카드값이나 세금 등이 지출된다. 현관에 택배기사가 오면 휴대폰이 전송받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알람 한다. 


비 오는 날에 운전하면 날씨에 맞도록 차량의 음악이 선곡되고 마치 내 기분을 아는 듯 알아서 뭐든 해주려 한다. 외출 시에는 집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빽빽한 주차장에서 내차가 어디 있는지도 알려준다.

휴대폰이 있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내 삶이 휴대폰에 종속될수록 나의 만족도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기술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자들에게 휴대폰의 기술적 진보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과 공존하는 우리의 미래"를 뇌과학자나 심리학자, 사회학자라면 긍정적인 면보다 암울한 부분을 더욱 강조해서 이야기할 것 같다.


얼마 전, MRI를 통해 상대방의 표정 변화에 반응하는 뇌기능 활성화 정도를 관찰한 결과 스마트폰 중독자는 정상인에 비해 활성화 정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접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표된 많은 연구에서 스마트폰의 지나친 사용이 언어능력 장애, 이성적 사고와 감정조절 발달 저해, 공감능력 저하와 ADHD를 비롯한 심각한 사회성 결여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아마도 여기서 휴대폰 중독이라 함은 SNS와 게임에 과몰입되어 우리 인체가 물과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통제 없이 휴대폰과 인체가 동기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닐까 한다.


분명 SNS는 인류 발전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으나, 긍정적인 면 만을 생각하고 처음 SNS를 개발한 개발자의 의도와 달리 SNS의 광범위한 활용이 뜻밖의 사회적 역기능을 생산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정 휴대폰 어플은 누군가의 클릭수가 돈이 되는가 하면, 악플에 상처 받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SNS세대에게 공감은 "좋아요!"의 숫자에 비례할 수도 있고, 구독자 수로 가치를 평가받기도 한다. 평생을 살며 지구 어느 곳에 사는지도 모르며 한 번도 만나지 않을 누군가의 feedback에 울고 웃는다.


어떤 이는 휴대폰에 스스로 종속되어(정확히는 SNS 앱에 종속되어)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 달라고 매달리며, 보이지 않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쾌락을 느끼기도 한다.


 SNS를 개발하는 개발자들은 과연 그들의 기술이 성매매에 이용되고,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을 내뱉는 감정의 쓰레기장으로 사용될 것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오늘날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가장 강력한 소통의 수단이 되고, 누군가는 단숨에 영향력 있는 파워 불로거로 스타가 되거나,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의 강력한 도구로 바뀔지는 몰랐을 것이다. 전 세계의 이토록 많은 인구가 SNS에 중독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 "블랙 미러"에서 운전 중 소셜 앱의 알림 소리에 무심코 반응하다가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급기야 소셜 앱 개발사 인턴직원을 납치해서 무장한 경찰과 대치하며 생면부지의 사장과 통화를 요구하는 주인공이 그에게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오늘도  "좋아요!"와"구독!"은 이브의 사과처럼 SNS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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